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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18. 2023

사랑해요 ㅡ A가 X에게

존 버거

이런 텅 빈 밤에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나면,

커다란 무언가가 내게 찾아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침묵은 언제나처럼 압도적이죠.


내가 받은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 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겐 두려움도 없을 거예요.

야 누르, 사랑해요.


<존 버거 _ A가 X에게>




사랑한다는 나의 일방적인 말로도 내가 채워질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자체로 내 감정은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가 완성해 가는 것, 상대에게 의지하는 순간 흔들리고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사랑이 실패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사랑하다가 중간에 흔들리는 것 역시 상대의 태도와 자세에 의존하는 나의 '조건적인' 사랑이 문제인 것이다.



'포기'가 포기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를 위해 포기, 즉 나를 버림으로써 그가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아낌없는 낭비고 스스로를 온전히 소모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그 사람만 남고 나는 사라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나를 버릴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도 내가 충만할 수 있다면, 사랑은 언제나 말을 넘어선, 때로 상대의 침묵조차도, 심지어 포기하는 것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온전한 사랑은 나를 완성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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