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라는 존재는 없어요.
내가 바로 ‘당신’이에요.
나를 당신과 떼어 놓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니스트 헤밍웨이 _ 무기여 잘 있거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렇지, 내가 없어진다니. 내가 바로 당신이라니.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 이 문장을 다시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주인공 프레드릭 헨리와 캐서린 버클리와 같은 처지에서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가장 극한적인 전장이라는 상황에서라면. 오직 당신만 보이고 나는 보이지 않는 게 사랑에 푹 빠진 연인들의 운명이니까. 전쟁은 그들을 운명처럼 사랑으로 엮어주었다.
눈에 콩깍지가 씐다는 말은 거기에서 나왔다. 무엇엔가 홀려 제정신을 잃을 만큼 빠져들고 말았으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거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바로 그 사람의 시선을 나의 시선으로 삼는 것! 어느 순간 나의 시선이 당신의 시선으로 바뀌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게 사랑이다.
나를 당신과 떼어 놓고 생각하지 말라는 이 고백이야말로 제대로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고백이 빛을 발하려면 시간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시간을 극복하고 초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시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좀 더 시간을 갖고 기다렸더라면~', 하고 후회해도 이미 버스는 떠나고 말았다. 소용없는 짓이다.
아무튼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에 대한 나의 감정과 열정을 도저히 억누를 길이 없다. 사랑은 그래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때로 고통스럽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가 엘리자베스 베넷에게 했던 이 고백처럼, 사랑에 빠지면 속수무책이 되기 때문이다.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 봤자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 ㅡ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