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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21. 2023

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 팔십팔야

자의식이 너무 강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다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그가 쓴 단편소설 ‘팔십팔야’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에게 절망하여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을 썼지만, 그만큼 자신이 추구했던 문학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작가도 찾기 어렵다. 삶에 절망했다는 말은 그만큼 생에 집착했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작가 '가사이 하지메'가 소설의 주인공.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통속소설을 쓴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더는 참지 못하고 없는 돈을 끌어모아 현실 도피성 여행을 떠난다. 냉정한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통속소설을 써야만 하는 비굴한 자신을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갈 곳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자신에게 아직 낭만이 남아 있을 거라면서도, 가족을 위해 또 세속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그저 열심히 글을 쓰는 바람에 나이에 비해 늙어버렸다고 한탄한다. 그는 말한다.


'자신은 매우 가난하다고. 최근에는 꽤 열심히 통속소설을 쓰고 있지만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괴로움에 발버둥 치다가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그래서 지금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래도 한 가지는 알고 있다고. 바로 한 치 앞에 어둠이 있다는 것.'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신슈'로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도 순조롭지 못하다. 그곳에 찾아간 이유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관의 여종업원 때문이지만 어렵게 만난 그녀는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바쁘다. 혼자 진탕 술만 마시고 토하고 그러다 깨어보니 아침. 뒤죽박죽인 무엇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뭘 해도 되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당신은 최근 이삼 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이렇게 답한다. ‘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생활에 대해서는 조금 터득한 게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노력은 심하게 휘어진 못을 다시 펴서 곧게 만들려는 노력과 비슷한 것입니다. 워낙 작은 못이라 힘을 줄 곳이 없기 때문에 구부러진 곳을 곧게 펴기 위해서는 상당히 강한 압력이 필요합니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애면글면 얼굴을 붉혀가며 힘을 쏟았습니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도 나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뭔가를 제대로 해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작은 못을 펴는 것도 큰못을 펴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 일이다. 비교 불가능한 것이다. 통속소설을 써야만 하는 현실이 못마땅하고 그런 시원치 않은 소설을 쓰느라 문학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었다고 토로하지만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몰래 읽었고 심하게 휘어진 쇠못이 조금씩 곧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문학을 향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여행길에서도 좌충우돌하면서 헤매고 심지어 점점 더 추락해 가는 스스로를 힘들어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의 십 년 만에 3등 열차가 아닌 2등 열차를 타면서 다음에 쓸 작품을 생각한다. 낯선 곳에서 헤매고 나서야, 자신만을 위해 제대로 돈을 쓰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며 이제부터 좋은 작품을 쓸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가사이 하지메와 다자이 오사무가 오버랩되었다. 그 무렵 결혼으로 생활은 안정되었지만 작가로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했던 다자이 오사무.


제대로 된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로맨틱하게 살고 싶은 자신을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절망했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게 글을 써나갔다는 점에서 그는 가사이와 닮았다. 사람들은 그를 ‘인간 실격’의 작가로 기억하지만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가 자신의 생을 긍정하는 얼마나 낭만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전작주의자로 지내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감탄했다가 안타까워했다가 그렇게 몇 달을 지냈다. 이 작품을 포함해서 그의 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러니 ‘인간 실격’의 작가로만 기억하지 마시길!!) 그건 아마도 자신에게 지나치게 솔직한, 무엇보다 삶에 절망하면서도 끊임없이 다시 일어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절망은 희망인 것이다. 자신에게 정직하게 절망해 본 사람만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팔십팔야‘의 실제 주인공 다자이 오사무가 죽을 때까지 글을 썼던 것도 바로 그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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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고 있나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믿고 성공시켜야 합니다. 굳이 미타카까지 올 필요는 없으니,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세요. 하루 한 줄이라도."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고야마 키요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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