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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17. 2023

나답게 살기 위해서ㅡ척하지 말았으면

기분이 별로일 때 전화를 받으면 썩 좋은 반응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자주 통화하는 가족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편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런 반응을 보이면 전화한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 가급적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하물며 가족이라면 더더욱 배려해 주고 아껴주어야 하니까요.


기분이 썩 좋지 않으면 차라리 전화를 잠시 받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감정을 숨기고 마지못해 기분 좋은 척하는 것보다는 아예 그런 상황을 안 만드는 거지요. 기분이 나아지면 그때 전화를 다시 하면 됩니다. 물론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적당한 변명 거리를 찾아야겠지만요.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분이 별로여도 좋은 척, 우울해도 우울하지 않은 척, 슬픈 영화를 보고 그다지 슬프지 않은데도 슬픈 척, 모르는데도 아는 척... 척척척.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지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니 때로 우울해지기도 하구요. 아무튼 '위선'은 별로입니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 때, 누군가 옆에 와서 말을 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너, 지금 기분 별로지? 화났지?" 이런 유의 넘겨짚는 말을 들으면 안 났던 화가 나기도 하고 기분이 더 상합니다. 도무지 혼자 놔두지를 않는구나, 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이미 망가진 기분을 다시 회복하기는 여간해선 쉽지 않습니다. 이때도 안 그런 척하면 그냥 넘어가겠지요. 그런다고 기분이 나아질까요?


아이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아이니까, 아직 어리니까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고 넘어가 주었겠지요. 굳이 ~하지 않은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마저도 배려를 받기 어려워졌습니다. 감정에 충실하면 자칫 나잇값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지요. 사는 건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발적으로 '~척하면서' 살지만, 사회나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그렇게 살 것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남 눈 의식해서 행복한 척하거나 모르면서도 체면상 아는 척하거나 겁나면서도 애써 의연한 척해야 하는 순간들... 피곤합니다.


내 감정 때문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되니 그들의 감정을 배려해야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억누르고 숨겨야 하는 나는 어떻게 하나요? 이제는 아닌 '척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뭔가 나를 숨기는 것 같고,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드니까요. 한마디로 ~척하는 위선을 버리고 진솔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은 겁니다. 물론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요.




“좋은 관계의 기본은 ‘진솔함’일 것이다. 진솔함은 ‘척하지 않는’ 태도에 긴밀히 연결된다. ‘행복한 척’에 연결되어 있는 과시욕, ‘교양인인 척’에 연결되어 있는 가식과 허세만 제거해도 삶은 훨씬 담백하고 자유로워진다. 명품이나 아파트 평수에 저당 잡히는 불행한 삶도 ‘척’에 연결되고 자식의 학벌이나 직장이 남 보기 번듯하길 바라는 것도 ‘척’에 연결된다.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척하는' 욕망에 사로잡히면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김선우 시인의 조언입니다. 내 감정을 존중받고 싶은 마음과 다른 사람들과 분위기를 맞추며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 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가끔은 뭐가 맞는지 헷갈립니다. 그래도 참아야겠지요?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면 나도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이것도 일종의 '척이지만' 이건 그리 나쁘지 않네요. 위선이라고 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춘삼월(春三月), 봄인데도 요 며칠 다시 쌀쌀해졌습니다. 모두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참, 출근을 하는데 뉴스를 보니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헨델 프로젝트(The Handel Project)'가 미국 빌보드 클래식 주간차트 정상에 올랐다고 하네요. 마침 저는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를 듣고 있었습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 Franz Peter Schubert  

6 Moments musicaux, Op. 94,

D. 780 - III. Allegro moderato

* Seong-Ji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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