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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15. 2023

우리는 사랑을 알 수 없다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지,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 이상의 감정을 말하는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대상에 따라 사랑의 정의가 달라지기도 한다. 아가페(Agape), 에로스(Eros), 필리아(Philis) 등 종류도 많고 다양하다.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랑은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이 주된 것이다.  


사랑이 어떤 언어로도 규정될 수 없는 건, 사랑은 둘만의 특별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오직 둘만이 공유하는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다. 둘 사이를 떠나서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헤아리기 어렵고, 연인들 역시 사랑할 당시엔 서로의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 수도 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언어로도 증명이 곤란한 것일 수도 있다.  


함께 있고 싶고, 헤어지면 아쉽고, 다시 보고 싶고, 하루의 대부분을 그 사람을 생각하며 보내고, 나의 부족한 면까지도 오픈할 정도로 그에게 믿음을 주는 것, 우리는 사랑을 이렇게 단편적인 사실로 정의할 수밖에 없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로 정의하였듯이 말이다.




그 사랑의 감정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대의 부재를 통해,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아주 나중에 마음 깊은 곳에서 확인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즉, 사랑은 그 사람의 부재를 통해 비로소 증명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와 떨어져 있는 동안, 그(녀)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뭘 하는지 궁금해한다. 만나는 것보다 이런 순간들이 나를 그녀에게 더 붙잡아 두는 것이다. 감정이 깊어지고 명확해지는 건 바로 그 부재의 순간들이다. 


떨어져 있어 봐야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지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헤어진 후 많은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건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가 없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나를 견디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내 사랑을 내면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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