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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05. 2023

사랑의 마음을 잃은 것이 더 슬펐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 지고 말 것을

어떤 문장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깁니다. 1968년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 <푸른 바다 검은 바다>의 이 글처럼.



"시간과 공간을 정복한 저 멋지게 풍부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잠시 가지기 위해 인간은 태어난 것일까요. 그리고 죽는 걸까요. 아아, 모르겠습니다. 내가 눈앞의 푸른 바다가 아니라는 게 불행일까요. 아니, 그때는 나도 리카코도 눈앞의 검은 바다이지 않았던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한계와 삶의 허무함을 표현한 이 문장 앞에서 저는 책을 내려놓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푸른 바다처럼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우리가 했던 사랑이 마치 영원하기를 바랐지만, 세월 앞에서 모든 것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눈앞에 검은 바다만 보일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이자 인간이 걸어가야 할 삶일까요.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요. 저항한다고 달라질까요. 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대해, 무엇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하지만 더 슬픈 것은, 우리의 한계와 운명이 아닙니다. 세월을 핑계 삼아, 부질없는 상황 논리에 빠져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다리마저 끊겼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대가 끊었을 수도 있고, 마지못해 내가 끊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 일요일, 미세먼지가 물러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습니다.




"당신을 잃고 나서는 꽃의 색, 작은 새의 지저귐도 저에게는 따분하고 허무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천지만물과 제 영혼이 통과하는 길이 뚝 끊어진 것입니다. 저는 애인을 잃은 것보다 사랑의 마음을 잃은 것을 더 슬퍼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_ 서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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