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Apr 12. 2023

나는 내 분수를 알고 있을 뿐
ㅡ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 <세속의 천사>,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의 외모와 여성들과의 관계를 '나'라는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이상하게 생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불친절하고 눈치도 없다. 게다가 품위 없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기도 한다. 여자들이 그런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 나는 오히려 그 부분을 조금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자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고 늘 생각한다.


자포자기 상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단지 내 분수를 알고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여자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어쩌다 한두 번 여자의 사랑을 받게 되면 오히려 당황스럽고 비참하기만 할 뿐이다.


이제껏 나를 좋아해 주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간혹 가다 여자가 내게 사소한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면 그것을 무척 치욕스럽게 느끼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만이라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비굴한 반성을 하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1909 ㅡ 1948)

글을 읽고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물론 잠깐입니다. 한편 자신은 외모가 별로니 차라리 여자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게 이렇게 연관 지을 문제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외모가 그저 그러면 오히려 여자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이 남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니까요.


잠시 그러고 나니 다자이 오사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는 스스로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저는 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조금만 더 변명하자면, 비웃거나 냉소적인 마음이 들었던 건 아닙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이 귀여워서 지은 미소였으니까요.


그가 못생겼나요?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고백과 달리, 저는 그가 나름 준수한 호남형의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글까지 잘 쓰니, 아마 여자들한테서 제법 인기가 많았을 겁니다. 사생활이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요. 솔직히 그 부분은 제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인용하는 건, 그의 솔직한 자세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자신의 단점을 이렇게 솔직히 고백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것도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압도했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말입니다. 매우 드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낳은 천재 작가라는 권위를 버린 면도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 같으면 이런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외모와 관련해서는, 차라리 다른 사람들로부터 한 마디를 들을지언정, 굳이 먼저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 소설에서 그는 몇 명의 여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치욕스러운 기억을 고백하고 있다고 앞서 말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치욕스러운 기억을 고백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자긍심을 갖고 싶어서 글로 쓰고 있는 것이다.'라고 정정하는 편이 조금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다자이 오사무는 무척 자의식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존감도 높구요. 그래서 그의 고백이 더 진솔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지만, 다자이 오사무처럼 솔직하고 진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도요. 그게 바로 진정한 자존감이라고 믿습니다.


어디 글뿐이겠습니까?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순결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손해나 실패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에게는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용기가 없습니다.  


삶의 경중을 이해타산적인 면으로만 잴 수 없는데도, 세상은 점점 황금만능주의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참 서글픈 일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니 이렇게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만, 가끔 세상을 쫓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제 자신을 보면 씁쓸해집니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 미소가 지어졌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리저리 헤맬 것이다. 괴로워할 것이다. 그래도 이젠 괜찮다. 나는 해 볼 테다. 아직은 조금 휘청휘청하지만 그러다 곧 튼튼하게 자라겠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생활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먼저, 이 말을 믿어야 한다."  






* 참고로 이 소설은 일종의 '사소설(私小說)'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허구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써나가는 소설로 대개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가 대표적이지요. 이 소설도 <인간 실격> 등 작가의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다자이 오사무가 주인공입니다. 물론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평론가나 문학비평가가 아니니 혹시 견해를 달리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의 마음을 잃은 것이 더 슬펐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