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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07. 2023

당신이 없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어디를 가도 꽃 천지입니다. 개나리부터 목련 그리고 벚꽃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훌쩍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 늦은 밤, 달빛 아래 핀 벚꽃을 보며 잠시 넋을 놓았습니다. 이효석 작가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의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산허리에 핀 벚꽃의 행렬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달마저 그 빛에 취해 부끄러워 보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은 외부에서 오는 걸까, 아니면 내부에서부터 느껴지는 걸까.' 아마 둘 다겠지요. 외부와 내부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봄이 오는 겁니다. 둘 중의 하나라도 어긋나면 우리는 여전히 겨울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절기상 봄이지만 봄이 아닐 수도 있는 거지요.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빛과 와인, 석류 꽃향기가 가득하네요.



활짝 핀 꽃들을 보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메마르게 말랐던 나무가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품고 있었다니, 그 질긴 생명이 경이로웠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다고 해도 당신이 없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당신이 지금 옆에 있으면 이 모든 것이 없어도 그만일 테고요. 페르시아 수피 시인 루미(Rumi)의 시 <봄의 정원>을 떠올린 건 단지 아름다운 봄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오시지 않으시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절망과 희망은 동전의 앞뒷면 차이에 불과한데도, 그동안 내 곁에 있는 당신을 보지 못하고 마치 멀리 있는 것처럼 한참을 찾아 헤매었던 것인지... 아무리 아름다운 꽃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해도, 어디 당신의 맑은 눈동자에 담긴 꽃만 할까요. 이 순간 봄에 핀 꽃들의 아름다움이 절로 무색해집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오신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전경린 작가는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애틋하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한 통속이 되었을 때 괴롭고, 한 통속이 되지 않으려 할 때도 괴롭고, 한 통속이 되려 할 때도 괴롭다."


이 봄, 내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한 통속이 되고 싶습니다. 비록 괴롭더라도 말입니다.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찬란한 아픔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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