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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18. 2021

아름답지만 쓸쓸한 편지

미야모토 테루/금수


당신도 문득 나를 떠올리며

어딘가 혼잡한 길을 걸을 때가 있지 않을까?

...

아직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미야모토 테루_ 금수>  





금방 비가 쏟아지려는 듯, 하늘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비가 오려면 오라지, 하는 마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잔뜩 구름이 낀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는 10년 전 이혼을 한 남녀가 주고받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이미 헤어져서 남남인데 다시 편지를 주고받다니 상식적으론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다. 그래도 두 사람은 헤어진 데 대한 원인과 책임을 따지기보다는 그 이후 서로 겪어야만 했을 어려움과 힘겨웠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생에 대해 잘 모른다. 그들도 그랬다.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행로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편지 곳곳에 배어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헤어진 이유에 대해 짐작은 가지만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인연이 다했다고 말하는 건 진부하고 무책임하다.





참, 오늘은 책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냥 지나간 시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문득 이 책이 떠올랐기 때문에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책상 앞에 앉았는데...


모니카 마론은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고 했다. 살아보니 남는 건, 사랑했던 기억뿐이다. 좀 더 사랑하지 못했던 후회와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책 속의 주인공도 이제는 헤어진 상대에게 자신처럼 그도 어딘가를 걷고 있을 거라고, 자신을 떠올리며... 그도 아직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마 편지를 쓴 주인공이 상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안타깝다. 두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며 이심전심하는 나도 그렇고. 사진은 예전에 부산에 근무할 때 찍었던 몇 장 안 되는 사진 중에 하나다. 이젠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철 지난 사진을 보고 있으니 궁상맞다. 그 시절이 별로 좋지도 않았는데 왜 그리운지... 모르겠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그런지도. 아마도.




'예전에 아버지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야. 시시각각 변해가는 신기한 동물이지.” 아버지의 말대로입니다. ‘지금’ 당신의 생활 방식이 미래의 당신을 다시 크게 바꾸게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과거 같은 건 이제 어쩔 도리가 없는, 지나간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과거는 살아 있어 오늘의 자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에 ‘지금’이 끼어 있다는 것을 저도, 당신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미야모토 테루(みやもと てる) _ 금수(錦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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