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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11. 2023

봄날의 경이에 예민해지는 자

며칠 전에는 비가 왔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모처럼 내리는 단비입니다. 비가 오니 사방이 조용했습니다. 덩달아 마음까지 차분해집니다. 이미 지고 있는 벚꽃, 아마 비가 그치면 그나마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남은 벚꽃들도 다 지겠지요. 이번 봄은 평년보다 좀 빨리 왔다가 이대로 가버릴 것만 같습니다. 계절도 점점 성급한 인간을 닮아가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계절이 바뀐다고 마음까지 바뀌는 건 아닙니다. 지천에 꽃이 피어도 봄으로 느끼지 못하면 여전히 봄은 오지 않은 것입니다. 뭘 한 것도 없는데, 이 봄이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시 온 건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적은 믿는 자에게만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그 대상을 관심 있게 바라봅니다. 때가 되면 당연히 오는 것처럼 여기지 않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기적처럼 생환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봄'이라고 믿는 자에게만 봄은 그 자태와 아름다움을 보여줄 겁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제대로 된 사랑을 아는 사람일 거구요.



김소연 시인 역시 <마음사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날의 경이에 예민해지는 자. '그는 사랑을 아는 자다'라고 조심스레 적어본다. 봄이 오고 또 간다는 이 은근한 힘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무슨 기적처럼 여겨지는 사람은 아마도, 사랑을 아는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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