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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봄날의 경이에 예민해지는 자

by 서영수

며칠 전에는 비가 왔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모처럼 내리는 단비입니다. 비가 오니 사방이 조용했습니다. 덩달아 마음까지 차분해집니다. 이미 지고 있는 벚꽃, 아마 비가 그치면 그나마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남은 벚꽃들도 다 지겠지요. 이번 봄은 평년보다 좀 빨리 왔다가 이대로 가버릴 것만 같습니다. 계절도 점점 성급한 인간을 닮아가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계절이 바뀐다고 마음까지 바뀌는 건 아닙니다. 지천에 꽃이 피어도 봄으로 느끼지 못하면 여전히 봄은 오지 않은 것입니다. 뭘 한 것도 없는데, 이 봄이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시 온 건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적은 믿는 자에게만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그 대상을 관심 있게 바라봅니다. 때가 되면 당연히 오는 것처럼 여기지 않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기적처럼 생환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봄'이라고 믿는 자에게만 봄은 그 자태와 아름다움을 보여줄 겁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제대로 된 사랑을 아는 사람일 거구요.



김소연 시인 역시 <마음사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날의 경이에 예민해지는 자. '그는 사랑을 아는 자다'라고 조심스레 적어본다. 봄이 오고 또 간다는 이 은근한 힘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무슨 기적처럼 여겨지는 사람은 아마도, 사랑을 아는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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