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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22. 2023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함께 할 수 있다고

가와바타 야스나리 / 푸른 바다 검은 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소설 <푸른 바다 검은 바다>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이 단편은 그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살, 죽음이 언급되고 주인공의 의식세계도 뒤죽박죽입니다. 감정선 또한 선명하지 않고 모호합니다. 읽다가 이 단편에 섣불리 손을 댄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억의 세계로 도망쳤습니다. 기사코라는 소녀는 열일곱 살이 된 가을에 저와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은 기사코가 깼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또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집 마당에는 작약꽃이 있습니다. 기사코네 집 마당에도 작약꽃이 있습니다. 뿌리만 썩지 않는다면 내년 5월에는 또다시 꽃이 피겠지요. 그러면 나비가 우리집 꽃의 꽃가루를 기사코네 집 꽃한테 옮겨주는 일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푸른 바다 검은 바다, 12p)




그의 소설은 스토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시 잊었나 봅니다. 문장의 美 그리고 어떤 상징과 은유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실패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모호해도 분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주인공은 기사코와 약속한 결혼이 깨졌음에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작약꽃을 통해 헤어진 연인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고 강변하는 모습에선 애처롭기도 하고 비장미마저 느껴집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이 있지 않나요? 헤어졌음에도 헤어진 게 아닌 상태. 매일 지웠다가 다시 살리고, 희망은 절망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가, 어느 순간 절망은 다시 희망으로 되살아나 나를 힘들게 했던 수많은 시간들. 자책과 원망 그리고 그리움.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사랑은 고통이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사람의 부재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차라리 더 이상 만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지언정, 그를 알지 못하던 그의 존재조차도 알 수 없었던 그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없는 것보다는, 지금 이 상태로 지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사랑은 서로의 집에 핀 작약꽃의 뿌리가 썩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휴대폰의 연락처를 아무리 삭제해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까지 지울 수 없습니다. 아니,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난 시절의 기억은 끊임없이 떠올라 우리를 괴롭히지만, 때로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지워지지 않는 그 사람의 연락처는 마치 작약꽃처럼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망을 상징하니까요.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또 함께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니까요.


하여, 주인공처럼 아무 관련도 없는 작약꽃을 생각해 내 끊임없이 옛 연인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탓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사랑을 잃은 사람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드물어 한적했습니다. 아름다운 이 길을 걸으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이 단편을 떠올렸습니다. 주인공의 사랑과 아픔도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작약이 있었다면 저에겐 이 ‘길’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기쁨이기도 했던, 또 누군가에는 실연의 아픔이기도 했던 그 ‘길’ 말입니다.

'보아라, 너와 결혼을 약속했던 열일곱 살의 처자는 네 아내가 되지 않았는데도 스무 살이 될 수 있었지 않느냐, 하고 나에게 싸움을 거는 것은 누구인가.' 저는 이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을 그때야 비로소 진정 마음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얼굴을 떨구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사코가 열일곱 살이 된 해 이후로 만나지 못했으니까 저에게 기사코는 스무 살이 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러자 저는 나라는 존재가 열쇠로 꽉 잠긴 방안 가득히 찬 탁한 가스처럼 여겨졌습니다. 만일 문이 있다면 곧바로 열어젖혀서 기사코 몸 뒤의 아름다운 경치 속으로 탁한 가스를 발산시키고 싶어 졌습니다. (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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