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남대교를 건널 때였다. 멀리 한강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이 보이고, 또 이렇게 하루가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져서 아름답고 붙잡을 수 없어 안타까운 것이 마치 지난 시절을 닮았다.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만나 좋아하고 사랑에 빠질 때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하고, 편안함이 설렘을 대신할 때쯤 처음 가졌던 감정은 어느덧 흐릿해진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싫어지면 모든 것이 싫어진다. 오히려 좋았던 그 점마저도 싫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위기를 잘 넘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결국 '이별(離別)'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만 끝내는 것'이라고 하는 것보다 '이별'이라는 말이 좀 더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이별은 '서로 갈리어 떨어진다'는 뜻이니 오히려 더 삭막한, 아주 위험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린 이별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한다. 수많은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이 이별을 주제로 시를 짓고 음악으로 그 아픔을 노래해서 그런 것일까. 사랑보다 오히려 더 많이 언급되었을 정도로 흔한 주제지만, 그 흔함 때문에 나는 그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헤어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레프 톨스토이도 <안나 카레니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싸워서 헤어지는 게 아니다. 화해하지 못해서,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헤어지는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또는 자신과는 무관한 이유를 갖다 대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대부분 쓸데없는 자존심과 알량한 이기심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 후에 오는 후회는 필연적이다.
나만 생각하면 모든 게 억울하고 그 사람이 원망스럽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데, 나는 그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데 서툴렀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을 미워하는 것 외에.
어느덧 해는 산등성이에 스치듯 내려앉았고 어둠이 점점 짙어질 무렵,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한데 길은 선연(鮮然)히 보이지 않고, 이미 사라진 빛을 찾아보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안타까운 심정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었다.
<K. ㅡ Cigarettes After S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