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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1. 2023

글이 술술 써진 적이 없다 ㅡ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장은 무엇보다 분명하게 쓰고 싶다. 나는 오직 그것만 염두에 둔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펜을 쥐고 있으면 그렇게 술술 써진 적이 없다. 어김없이 어수선한 문장을 쓰고 있다. 내가 문장을 쓰면서 고심하는 것은 (만약 고심이라고 할 수 있다면) 문장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고백입니다. 일본이 낳은, 그것도 나쓰메 소세키라는 대가가 인정한 천재 작가가 글이 술술 써진 적이 없다니, 더군다나 글을 써도 어수선한 문장을 쓰고 있었다니 믿기 어려웠습니다. ‘지나친 겸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가 이 글을 쓸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모르니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작가가 이런 고백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던 작가도 글을 쓰면서 고민을 했으니, 고민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고민의 정도와 내용만 다를 뿐이지요.


어쩌면 그의 말은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그게 누구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사람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되고 싶구요.


부족하거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이를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평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과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살아가는 성숙한 인간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약한 것이 아니라, 약한데도 강하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인가요? 요즘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런 세상을 쫓아가는 것도 힘이 드는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우리나라 영화 <도둑들, 2012>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일명 '팹시(배우 김혜수)'가 '예니콜(배우 전지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 도둑이 왜 가난한 줄 아니? 비싼 거 훔쳐서 싸게 팔잖아. 이건 뭐 그냥 자기와의 싸움!" 팹시가 웃는 예니콜에게 왜 웃냐고 묻자 예니콜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세상에 싸울 게 얼마나 많은데 왜 자기랑도 싸우는가 해서요."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반드시 맞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싸움은 자신과 해야지 다른 사람과 하면 아무리 싸움을 잘해서 이기더라도 부작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생겼겠습니까. 나와 싸우면 성숙해지지만 다른 사람과 싸우면 비참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합니다. 그전으로 올라가면 나쓰메 소세키도 있네요. 명성과 부를 얻으면 솔직해지기 어렵습니다. 지키려는 것이 많은 사람은 어떻게든 스스로를 과장하기 마련입니다. 스스로에게, 일관되게 냉정해지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라쇼몽'이나 '덤불 숲', '지옥변'과 같은 작품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죽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쓰고 또 썼다고 하는데, 책만 쌓아놓고 쓸데없는 생각이나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저를 보면 한심하기만 합니다. 류노스케처럼 선택이 필요한 매 순간 분명하고 딱 부러질 수 있었으면, 좀 더 스스로에게 진솔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벌써 6월도 하순을 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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