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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30. 2023

당신이 열등한 존재라고 느끼지 말았으면 ㅡ 마누엘 푸익

6월의 마지막 날, 월초에는 늘 새로운 다짐을 하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시간만 쏜살같이 지나간 것 같다.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는 건, 삶에 특별한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때부터 시간이 천천히 가기 때문이다.


아마 잘못된 선택에 따른 후회와 불편함 때문에 시간이 더디 간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어서 이 힘든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인간의 바람과 어깃장을 놓는 보이지 않는 힘의 충돌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그러니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고 느낀다면 지난 한 달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꼭 내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위안을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6월을 유익하고 알차게 보냈을까? 하는 질문 앞에 딱 부러지게 긍정할 수 없었다. 제대로 보낸 것 같지 않은데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 것으로 봐서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닌 것 같고, 문제가 수면 밑에 잠복되어 있는데도 모르고 넘어갔든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어서 별다른 기억이 없든지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아무래도 후자 같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은데, 마치 텅 빈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별다른 기억이 없다. 이 생각을 하면 슬퍼진다.



 "네가 무엇이 되고 싶든

그것 때문에

지금의 네가 열등한 존재라고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어." 



마누엘 푸익(Manuel  Puig, 1932 - 1990)의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에 나오는 글이다.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에 얽매여 위축되기보단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희망사항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혔으면 하고 바라었지만, 그러나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사실 그렇게라도 마음을 추스르지 않으면 나만 힘드니, 이 글로 6월의 마지막 날, 곧 시작되는 7월을 새롭게 맞고 싶은 것이다.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며 한숨을 쉬며 자책하는 건 짧게 끝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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