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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3. 2023

의미 없는 순간이나 무의미한 일은 없다

한 편의 시를 반복해서 여러 번 읽는 편이다. 처음에는 눈으로 읽으면서 문장을 음미하고, 다음에는 가볍게 소리 내어 읽으면서 시구가 주는 리듬감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눈을 감고 마음으로 되새기며 시구 사이의 여백을 느끼려고 한다. 매 순간마다 주는 묘한 차이, 그 차이를 느낀다면 제대로 읽은 셈이다.


같은 시를 여러 번 읽는 것은 쉽지 않다. 


바쁜 세상에서 할 일도 많고 읽을 책도 많은데 똑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다는 건, 문장이 아주 아름답거나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타임 테이블을 정해 놓고 읽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없이 늘어졌다. 최근 들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자연스럽게 반납 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시간에 쫓기면서 읽다 보니 작가의 미세한 음성, 숨겨놓은 의도까지 파악하긴 쉽지 않았다. 또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갖지 못할 때가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읽었던 책은 남는 게 없었다. 책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책을 읽는 자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 문맥과 단락 그리고 그 문장이나 단락이 전체적인 줄거리에서 갖는 의미를 알지 않고선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시는 더하다. 산문이나 소설보다 의미와 표현을 압축해 놓다 보니 한 번 읽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도 적지 않았다. 최소한 시만은 여러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도 다르지 않다. 한 번 보고 상황이나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 여러 번 보고 헤아리면서 그가 한 말이나 주어진 상황이 나에게 던져준 방향과 지향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마디로 거저 얻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의미를 깨달으려고 노력하면,

의미 없는 순간이나 무의미한 일은 없다.


문제는 인내심과 집중하는 힘이 있는지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같은 삶을 여러 번 살 수 없으니 마치 임박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더더욱 순간순간의 삶에 몰입해야 한다. 시나 책처럼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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