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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4. 2023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공직자는 큰돈은 못 벌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다. 검사로 일하는 동안 생계와 관련된 근본적인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에서 나오는 급여로 생계를 꾸리고 가족을 돌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내가 어떤 자리에 가서, 어느 곳에 살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공직을 떠난 지금은 어떤가. 그때만큼 안정적이진 않다. 변호사를 하는 친구나 동기들을 봐도 그 시절보다 벌이가 나아졌어도 걱정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어느덧 장년의 나이가 되어 떠안은 짐도 짐이거니와 그때보다 현실이 녹녹하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모두 먹고사는 문제가 주된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한편 내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 모든 일이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삶으로 체험한 후 더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졌다. 한때는 의욕이 넘쳐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면서 그게 얼마나 환상에 불과했는지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힘으로 되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축복이 아니었나 한다. 마음대로 또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안하무인인 사람이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광야였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모래와 바람만이 있는 그곳에서 그들은 굶주리기도 했고 갈증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 광야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 그들은 크게 절망했다. 그들 역시 주된 관심은 생존, 먹고사는 문제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절망은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로지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준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가끔 기적과 같이 솟아나는 샘물을 마셔야만 하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간조하고 척박한 땅에서 하루하루 지쳐가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은 큰 시험이었으리라.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주장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 숭배에 빠졌던 것이다. 광야는 그런 곳이었다. 물리적인 한계를 시험하고 보통의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감에 빠지거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믿게 만드는 곳, 마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처럼 말이다.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도 이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들처럼 절망하면서 불평불만으로 남은 생을 낭비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이끌었던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끝까지 신뢰하고 믿음으로 남은 길을 걸어갈 것인가.


결론은 명확하지만, 막상 현실로 돌아와서 실천하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믿음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들 중에 한 명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광야, 즉 척박한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내가 과연 그 시험을 끝까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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