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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07. 2023

존재의 불안은 사치스러운 불만이었다

미시마 유키오 ㅡ 금각사

현실이 불만스럽다면 대개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뭔가 내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을 때 불만스러워진다. 불만을 가진다고 해서 뭔가 되는 것도 없다. 불만은 불만에 그칠 뿐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내 영혼만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가끔 생각한다.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건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무엇이 부족하다고…' 어쩌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답게 살고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불만이 생길 리가 없는데,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나를 확인하게 되면서 자꾸 주눅이 들고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나를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이 정도로는 안 되겠어, 뭔가 더 해야 해.' 스스로를 자꾸 독려하고 추동해 보지만 쉽지 않은 일, 불만은 노력으로 극복할 일이 아니었다.



'내 관심은, 내게 주어진 난문(難問)은 미(美)뿐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 나오는 주인공 미조구치가 그랬다. 그는 선천적으로 말 더듬는 증세가 있었다. 말을 더듬으니 어디 가서도 자신 있게 나설 수 없었고, 늘 주눅이 들어 세상에 대한 불만과 적의가 넘쳤다. 그가 금각사를 처음 보고 그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한 것도 자신감이 없는 자신의 모습과도 관련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여인을 만나도 정상적인 관계를 갖기 어려웠다. 결정적인 순간에 화려한 금각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그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는 불능이 되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금각의 美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찮게 여겨졌다. 그는 말한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니까.

원래 존재의 불안이란

자신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치스러운 불만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삶은 거창한 게 아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더 큰 것을 원하면 욕심, 그 욕심 때문에 불안해지고 나라는 존재가 자꾸 힘들어지는 거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만족하지 못할 때 불만이 생기고, 그 불만은 어떤 채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져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지난 주말 밤, 삼청동 주변을 산책했다. 광화문이 홀로 아름다웠다. 미조구치도 금각사를 보고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빠졌는데, 나도 그 순간만큼은 그와 비슷했다. 어떤 것으로 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미조구치처럼 '오직' 미에만 빠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뭐든지 지나치면 나라는 존재 역시 불안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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