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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8. 2023

아픔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이청준 ㅡ 젊은 날의 이별

"몸이 아픈 것도 우리 미영이 지금보다 더욱 착해지라고 그러는 거야. 몸이 아프면 물론 마음도 아플 것은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마음은 아픔을 경험해야만 더욱더 고와지는 법이란다. 아파보지 않은 마음이 착해지고 고와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는 없어. 착하다는 것은 그냥 착하기만 한 것으로 값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착함을 지켜나갈 힘을 함께 지녀야 정말로 귀한 것이 될 수 있지 않겠니.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 미영이 앓고 있는 것을 오히려 축복하는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싶은 거란다. 글쎄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그러면서 종종 그 아픔 속에서 자기가 한없이 착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거든.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위로를 스스로 구해 받고 있다는 말이 되지 않겠니."

이청준의 <젊은 날의 이별>에서 폐렴으로 입원한 딸 미영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하는 위로의 말이다. 어째서 마음은 아픔을 경험해야지만 더 아름다워지는 걸까. 인간의 마음은 원래 부패해서 가만히 놔두면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 채워지기 때문일까. 시기, 원망, 불만, 미움 등등.


마음에 좋은 생각으로 충만했던 것이 언제인가 싶다.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비뚤어지게 바라보는 것도 그 마음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에 충격을 주어서라도 순수했던 초심을 회복하거나 뭔가 새로운 좋은 것들로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착하다는 것만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없다. 항상 착하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호시탐탐 마음을 노리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되었던, 다른 사람이 되었든, 몹쓸 상황이 되었든 나는 나를 지킬 힘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착한 마음을 먹기 위해서 아픔과 고통은 불가피한 일이다. 인간은 고통을 느껴야만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바로잡기 때문이다. 원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맞아, 고통에도 다 이유가 있는 거였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작가가 고마웠다.


자초했든 외부에서 온 충격이든, 아픔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사실이 분명히 있다. 나는 그렇게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존재라는 것. 따라서 험난한 세상에서 마음을 지키고, 더 나아가 착한 마음을 간직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고통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의연해지기 위해선 고통이 나한테 다가와도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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