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Sep 19. 2023

죽음이 실제로 닥쳐온다면

안톤 체호프 ㅡ 지루한 이야기

“만일 죽음이란 것이 실제로 닥쳐온 위험이라면 나는 그것을 교사이자 학자이자 그리스도교 국가의 시민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맞이해야 하겠지. 즉 용감하고 평화로운 영혼으로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피날레를 망치고 있어.”


안톤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 책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지루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살아 있는 자들에게 생소한 죽음을 성찰하는 이야기인 탓일까. 근대 단편소설의 거장인 체호프가 젊은 시절에 쓴 단편소설이다.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비애와 절망감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 우리는 모두 약해진다. 살아 있는 자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그런데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무척 현실적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힘들어하지만, 나중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교수로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민한다. 나이 듦에 대해,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해. 그 생각만 하면 매사가 짜증스럽다. 아내와 아들, 딸이 있지만 모두 가식적으로 보인다. 그에게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 꿈같은 결혼 생활 끝에 얻는 사랑하는 자식들. 사회에서 얻은 명예와 높은 지위. 만인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람은 죽음과 같이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였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바쁜 일상의 삶이 한가롭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생각해야 할 때는 시간이 없고, 정작 시간이 주어지면 삶을 마감할 날이 얼마 남지 않는 현실. 


이제 병에 걸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음을 알게 되자, 죽음이란 그리고 삶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묻는다. 교수는 '재능 있는 손끝에서 창조된 아름다운 예술품'과도 같았던 자신의 지난 삶에 어울리는 인간다운 죽음을 갈구하지만 거기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노인은 온몸으로 허무감을 느끼지만, 실패했다고 단정하기엔 그의 삶 곳곳에 배어 있는 지난날의 행복의 단서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소설은 특별한 결론이 없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가 젊은 시절 썼던 소설이라고 하는데, 20대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성찰했다는 것이 놀랍다. 천재는 범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생각하는 것인지... 


밋밋한 이야기, 주로 주인공의 생각이 기술되어 있는 이 소설은 피상적으로 읽으면 제목만큼이나 지루한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삶 또한 대부분의 시간은 지루하고, 재밌는 시간은 극히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루하다 보니 생각할 여지는 많아졌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 그게 아니었을까. 한 번 주인공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당신은 죽음을 인식하고 대비하고 있기냐 하느냐고. 제목은 지루한 이야기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 한줄평: 지루하고 피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안톤 체호프의 손을 거치면 죽음마저도 묵직한 주제로 탈바꿈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픔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