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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23. 2023

의지와 노력이 가치로서 드러나는 순간

가와바타 야스나리 ㅡ 설국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撥木, 샤미센의 현을 퉁겨 소리를 내는 도구)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다소 소질은 있다 하더라도 복잡한 곡을 악보로 독학해서 악보를 보지 않고서도 자유자재로 켤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강한 의지로 노력을 거듭했음에 틀림없다.


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틋해지기도 하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撥木)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


섬세한 손놀림까지는 귀에 익지 못한 채, 그저 소리의 감정을 알 수 있을 정도인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는 마침 적합한 청중이었다. (65p)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눈의 고장에서 알게 된 게이샤인 고마코가 연주하는 샤미센을 듣고 있다. 혼자 배워서 그런지 소리는 다소 거칠고 유연하지 못하지만, 그 소리를 내기까지 고군분투하며 애썼던 고마코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가 반한 것은 샤미센을 연주하는 고마코의 의지와 자세였던 것이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좋아서 듣게 되었지만 그 곡을 연주하는 뮤지션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그 음악에 더 반한 그런 때 말이다.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는, 마치 무아지경 속에 있는 듯한 느낌. 아, 인간이 아름답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시마무라가 본 고마코의 모습이 이러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좋아서 하는 순수한 마음과 열정, 비루한 삶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고, 우리의 기억에 남는 순간 또한 바로 그때다. 직업의 귀천이나 부나 명예의 정도를 떠나, 먼 훗날 그때를 돌아보며 그 시절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충실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몰입의 순간들이다.


내가 하는 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거라고 지례 짐작하면서 대충 보낸 시간들, 그 시간들이 내 인생을 무화(無化)시켰다. 끝에 남는 건 후회와 회한뿐. 내가 고마코를 봤어도 그 순간만큼은 반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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