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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19. 2021

빛나는 순간

영화/ 빛나는 순간

70세 고두심과 37세 지현우가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다니요. 상상조차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놀라워요. 막상 영화를 보면 둘의 사랑이 그렇게 절절할 수가 없어요. 30대 다큐멘터리 PD(지현우)가 물속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70대 제주 해녀를 카메라에 담다가 숙명적 사랑에 빠져요.


용암동굴에서 둘은 다소 난도가 높다고 알려진 백허그 키스를 하는데요. ‘이게 아닌데…’ ‘내 생에 이런 행복이 있을 리가…’ 하는 표정으로 처음엔 스스로 당혹해하고 주저하다, 이내 냅다 ‘후루룩’ 하는 처절한 느낌으로 지현우와 입술을 맞추는 고두심의 연기는 그녀의 연기 인생 중 최고로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어요.




칠십 평생 처음으로 자신에게 “곱다”는 이야기를 해준 남자에게 해녀 고진옥(고두심의 극 중 이름)이 난생 처음 보낸 러브레터는 귀엽고도 왠지 모르게 운명적이에요. ‘보고 싶다. 고진옥 올림.’


처음 두 사람은, 턱도 없는 관계였어요. TV 출연을 기피하는 까칠한 해녀와 어떻게든 프로그램 섭외를 성사시켜야 하는 PD였을 뿐이죠. 하지만 물에 들어가 5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 고두심을 구한답시고 물에 뛰어들다 익사 직전까지 간 지현우를 구하는 과정에서 고두심은 알게 돼요. 이 청년 안에 놀랍게도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러면서 영화는 사랑의 본질을 말해줘요. 호르몬의 폭발적 상호작용이 아니라, 상대의 영혼 속에서 나와 똑같은 생채기를 발견하는 것이 사랑이라고요. 나를 불쌍해하는 아픈 마음으로 상대를 불쌍해하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라고요.



고두심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는 상사화(相思花) 그래서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상징물이에요. 꽃이 피면 잎이 떨어지고 잎이 나올 무렵엔 꽃이 없으니, 꽃과 잎이 만나는 아주 빛나지만 결코 지속될  없는 찰나의 순간이야말로 비극을 운명으로 품은 둘의 사랑이겠지요.


“어떻게 하면 살아질까? 살다 보면 살아진다. 물속에서 숨 참는 것도 참아지고, 살아가는 데 힘든 것도 다 참을 수 있으니까. 살다 보면 살아져.”(고두심)





영화를 보다가 별안간 저는 인생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가 떠올랐어요. 세상 모든 고통을 짊어진 한 아저씨(이선균)를 사랑하는 소녀(아이유)의 이야기를 담은, 나 같은 아저씨들을 무한 위로하는 이 드라마 속 대사가 찌릿하게 스쳐 지나갔다고요.


“너 나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내가 불쌍해서 그래. 내가 불쌍하니까, 너처럼 불쌍한 나를 끌어안고 우는 거야.”(이선균)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린 둘 다 자기가 불쌍해요.”(아이유)


맞아요. 이선균의 말마따나 “거지 같은 내 인생을 다 알면서도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마운” 마음이 바로 사랑이에요. 사랑은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쓸쓸한 자기 연민이라고요.


<이승재의 무비홀릭 _ 고두심과 지현우의 키스>

늦은 밤, 산책을 다녀온 후 신문을 보다가 이 칼럼(동아일보)이 눈에 띄었다. 보통 신문은 스킵해서 중요한 기사만 챙기는데, 오늘은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그리고 여기 거의 전문을 인용한다.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보고 싶어졌다.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닌 희귀한, 현실에서 보기 드문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내 생각이기도 해서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나는 사랑의 완성단계를 연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마치 약한 나를 보는 것과 같은 마음. 그래서 언제까지나 옆에 있으면서 지켜줘야 할 것 같은 그런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하여, 사랑은 자기희생이고 자기 연민의 완성이다.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습 그대로 수용하는 ,  힘으로  사람도 같은 마음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


상대가 약점이 많고 허물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역시 그와 다를  없는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상대를 품어주는 . 그게 바로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이 세월에 따라 변하고, 한순간의 위기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세월과 어떤 장애물도 견뎌낼 수 있다. 그게 사랑의 힘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 역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두 불완전한 개인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면서 서로를 찾아 헤매다가, 동시에 상대방 안에서 그리고 상대방에 의해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처음의 빛을 잃어갈 때가 있다. 그때도 노력해야 한다. 처음 느꼈던 그 빛을 찾기 위해서. 빛을 찾아가는 여정은 때로 힘들고 막막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처음의 빛을 기억해서 다시 힘을 내야 한다. 오직 사랑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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