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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31. 2023

2023년 한 해의 끝에서

어제는 눈이 많이 왔다. 근년에 보기 드문 함박눈이었다. 집안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설경(雪景)을 바라보며 오늘은 걷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오는데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즐겁기보다는 걷기 불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드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싶었다.


벌써 아이들 몇 명이 눈 속에서 눈싸움을 하며 놀고 있었다. 저 아이들과 같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던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2023년이 끝을 향해 치닫던 어제, 내리는 눈을 보며 올해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 둔 음악을 들었다. 다시 들어도 좋은 곡이 있고, 내가 저 곡을 저장해 두었던가 싶은 곡도 있었다. 역시 기억이 문제였다. 뭔가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면 스쳐 보내고 마는 무심함이라니...


아마 그렇게 흘려보낸 순간들이 올해도 많았을 것이다. 흘려보냈으니 기억에 남았을 리가 없고, 기억에 남지 않았으니 추억할 것도 딱히 많지 않다. 눈여겨보고 귀담아들어 기억에 새기는 것만 남는 것인데, 나는 이 사실을 올해도 실천하지 못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이다 보니 좋았던 기억보다 아쉬웠던 기억만 떠오른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럴지 모르겠다. 한 해를 마감하는 것과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이 뭐가 다를까. 아마 비슷하리라.


뭔가를 이루기 위한 계획은 거창했지만 허둥대기만 했을 뿐 딱히 이룬 것은 없고, 기억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더 이상 기억하기 어려운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함과 쓸쓸함으로 가득 찬 그런 시간을 맞을지도 모른다.


눈이 녹아 이제는 눈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눈 반, 물 반으로 질퍽거리는 거리를 걷다 보니, 아름다운 것도 한순간이구나 싶었다. 하여, 눈이 내릴 때 그 풍경을 잘 봐두었어야 했다. 나는 다시 또 후회했다. 눈이 올 그 순간에 이 길을 걸었어야 했다고. 그 아이들처럼 그 순간을 즐겼어야 했다고. 이 또한 때를 놓친 뒤늦은 아쉬움이었다.


연휴에 눈까지 와서 그런지 거리는 인산인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023년은 거침없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만은 그런 세월의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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