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Jan 01. 2024

새해의 다짐 ㅡ 버리고 비우고 느리게

한 해의 마지막 날,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난해한 책을 붙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더 복잡해졌다. 잠시 거리로 나섰다. 눈이 녹아 잔설만이 뜨문뜨문 남아 있을 뿐, 대설주의보가 내린 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 녹듯이 사라진 을씨년스러운 풍경, 차라리 강추위가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겨울이 겨울 답지 못했을 때 겨울이 지닌 매력은 상실된다. 머릿속에 그린 풍경과 너무 다른 풍경이 펼쳐지다 보니 2023년이 간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더 아쉬웠다. 어느덧 한 해가 다 갔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새해가 오려면 지난해는 새해에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누군가 생명을 잃으면 그 자리를 새 생명이 대신하듯이, 상실과 부재를 겪어야 다시 충만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잠시 걸으면서 읽었던 책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2024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결심이나 계획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몇 가지 나와 약속을 했다. 마음을 비우고 버릴 것은 버리자고. 한 템포 느리게 살자고. 한 번에 한 가지만 하자고. 그 외에 몇 가지 더 있지만 아마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닦달했던 삶,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나는 사라져 버렸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아선 곤란하다고.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욕심과 욕망을 비우는 삶을 살자고. 몸이 아닌 정신과 마음의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따라서 2024년 새해, 나의 화두는 '비움과 버림'이 될 것 같다. 무언가를 얻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달려가라고 재촉하는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지만, 살 만큼 산 지금,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거다. 남들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신을 버리고 비워 본연의 나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은 감동은 완벽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연약함 가운데 삶의 아름다움을 잔잔히 보여주는 이들에게서 넉넉히 흘러나온다. 비움 가운데 더 큰 채움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의사로서 예흔의 리더로 활동했던 故 안수현의 말이다.


허기가 져야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처럼 마음속 근심과 걱정이 사라져야 새로운 생각과 의지를 담을 수 있다. 채우기에만 급급한 삶을 살다가 비움과 버림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 이것이 어쩌면 지난 삶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3년 한 해의 끝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