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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21. 2021

삶에 자극이 필요한 순간

루이스 세플베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

인생의 위기 순간, 힘들고 답답한 상황일 때, 우리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나 전문가를 찾게 된다. 그러나 그 방법이 해결책이 아닐 때 혼자 남겨진 듯 더 절망하게 된다. 찾는다고 해도 어느 친구가 밤을 새워가며 내 하소연을 들어줄 것이며, 내 고민을 해결해 줄 만큼 전문 지식이 있겠는가.


차라리 이도 저도 마땅치 않으면 책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했던 고민을 오래전에 다른 사람도 했고, 그 고민들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어보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나 <노르웨이의 숲>은 어떤가.


주인공들의 감정의 흐름이나 삶이 주는 고통이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나만 고민했던 게 아니구나, 깨달을 때 비로소 세상에는 나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젠가 같은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아마존 외딴곳에 살면서 1년에 두 번 소설책을 가져다주는 치과의사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슬픈가요?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옵니까? 그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질 만큼 괴로워 하나요?"


문명을 등지고 아마존에 들어온 그는 아내마저 죽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눈도 침침한데, 그것도 연애소설을 읽는다니, 이해가 되는가. 무엇보다 노인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에게 책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삶의 해독제, 세파에 찌들지 않은 방부제가 아니었을까. 그는 책을 통해 세월을, 무엇보다 외로움을 이겨냈던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마음도 끝까지 지켰을 테고.


나는 노인을 보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저 나이가 되어서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많은 도전도 되었다. 노인처럼 끝까지 책을 읽는 감성을, 노인이 했던 질문을 잃지 않겠노라고.





물론 책을 읽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내야 하고, 어려운 문장 앞에서 씨름해야 한다. 자기와의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는 거다. 책을 끝까지 읽어내면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거고, 그 결과 굳건한 정신을 얻게 된다. 삶의 자세 또한 다듬을 수 있다.


책을 읽는다고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답이 바로 찾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이미 답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찾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보다 훨씬 중요한 답 말이다.





한편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제대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세상을 모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도저히 잘난 체를 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겸손함, 즉 지혜를 몸에 배게 하는 거다.


스스로를 알아갈 때,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이유도 그와 같을 것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봉쇄된 지금, 책 읽기 좋은 시간이다. 마침 계절도 여름의 끝자락,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그러니 사람들 못 만난다고 탓하지 말고, 책을 읽으면 어떨까. 사람들을 만나서 흥청망청 술 마시고, 논다고 해결되는 건 별로 없다.


그것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굳이 이렇게 된 마당에 그렇게 못한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언젠가 코로나19에 감사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내 인생이, 생각이 많이 깊어졌다고. 그래서 삶 자체가 풍요로워졌다고. 다시 살아갈 큰 힘을 얻었다고.


어제 점심시간 잠시 산책에 나섰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책 읽는 사람이 몇 명 안된다. 덩그러니 책만 꽂혀 있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모습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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