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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20. 2024

무엇이 남았는가 ㅡ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얼마 전 검사 출신 후배 변호사들과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대화를 하면서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니 딱히 무엇을 남겼다고 할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앞으로 무엇을 남길지도 막막해졌다. 순간 몰려오는 낭패감이라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뭔가 남은 것이 없다면 과연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꼭 눈에 보이는 뭔가를 남기려고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뭔가를 대체할 만한 다른 무언가가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못내 착잡했다.  


선배로서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어떤 좋은 말도 '그런 나는?'이라는 질문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저 일만 하지 말고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라는 정도의 조언만 하고 말았다. 지극히 추상적인, 들으나 마나 한 말들, 곧 휘발되고 마는 그렇고 그런 말...




한때 나는 같이 일하는 검사들이 소위 검사스럽지? 않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직업이 검사일뿐 검사실을 벗어나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추궁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이미지가 아닌 평범한 한 인간으로 인간적인 삶을 살았으면 했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사건들과 효율적이고 정확한 사건 처리라는 목표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보내려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취미생활은 사치스러운 남의 이야기였다.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하는 삶의 연속,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중요한 사건을 수사할 때는 책을 읽을 시간조차도 없었다. 검사라는 직업은 자랑이자 긍지이기도 했지만 때로 나를 억누르는 무거운 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장검사가 된 후 후배 검사들이 나처럼 무미건조하게 살지 말기를, 나와 달리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시도를 했다. 함께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매달 영화를 본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매일 반복되는 그저 그런, 딱히 화제로 삼을 주제가 없어 남 이야기나 하거나 술이나 마시는 그런 선택 아닌 선택을 피하고 싶었다. 이 방법이 성공적이었는지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지금은 여기에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라도 나의 삶과 생각을 정리해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자칫 무미건조하거나 무의미하게 흘러갈 수 있는 시간 앞에서 여전히 고민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무척 교만한 말이다. 어쩌면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현명한 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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