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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6. 2024

망가진 인생 그러나 올바른 인간으로 살고 싶어서

미시마 유키오 ㅡ 짐승들의 유희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짐승들의 유희> 소설 제목이 좀 그렇지 않나 하면서 읽었다. 도대체 인간의 삶에 대해 쓴 소설에 짐승들이라니, 그리고 이성이 없는 짐승이 유희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왜 소설의 제목을 '짐승들의 유희'라고 지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굳이 의미를 찾자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동물들의 습성, 신이 준 본능과 자연이 허락한 상황에 충실한 모습과 태도를 닮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퇴폐적인 삶을 사는 '잇페이' 그리고 그의 아내 '유코'를 사랑하는 후배 '고지'. 그들은 한 집에서 동거한다. 그전에 고지는 잇페이를 폭행해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집에서? 언뜻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결말도 파격적인 소설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부분은 이것이다. 고지가 휘두른 스패너를 머리에 맞고 이젠 정상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장애인 잇페이를 유코의 부탁으로 산책시켜 주는 고지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잇페이에게 한 말이다.


"당신은 사실, 원망하고 있겠지. 화가 날 거야. 내 얼굴은 보기도 싫고 볼 때마다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들 거야. 하지만 여기에 불려 왔을 때, 나는 당신 얼굴을 보고 싶었어. 보는 게 두려우면서도, 왜 그런지, 보고 싶었어.


그리고 앞으로 당신 곁에 있으면 이번에는 올바른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알겠어? 장난감을 망가뜨린 아이를 진심으로 반성하게 하려면, 그 망가진 장난감을 계속 갖고 있게 해야 해. 절대 새 장난감을 사줘서는 안 돼.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부서진 내 인생과 죽 사이좋게 지낼 것 같았어." (336p)


잇페이의 난잡한 사생활을 보다 못해 그를 폭행한 고지, 아마 유코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에 다녀온 후 '나는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 사람이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항상 똑같은 주문을 외듯이, "나는 뉘우친 인간이다...."라고 말하는 고지에게 잇페이는 여전히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인간, 그러나 고지는 잇페이와 유코를 돕기 위해 그들의 곁에 머물면서 그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다. 자신이 망가뜨린 그러나 이제는 무력한, 누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장난감과 같은 존재인 잇페이 옆에 있으면서 진심으로 지난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쳤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면!! 행동은 자제하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질시와 원망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면 진정으로 뉘우쳤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지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잇페이 곁에 머물면서 이들 부부를 도와주기로 한 것은 스스로를 갱생하기 위한 또 다른 의지적인 행위였다. 소설은 현실에서 보기 드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나는 고지의 치열한 삶의 의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간의 삶이고 가끔은 비극까지 곁들여지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니, 미시마 유키오도 그의 삶만큼이나 어쩔 수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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