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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3. 2024

슬픔을 싣고 다니는 작은 배

지난해 읽었던 존 밴빌의 <바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선뜻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모호하지만 분명한 무언가가 숨어 있는 그런 책이었다.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되었지만 어떤 부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상실을 경험하는 인간의 숙명에 관한 이야기.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보다 툭툭 끊어진 의식의 흐름을 시각화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어떤 날 아침에 보면 밤새 운 것처럼 그녀의 눈 주위가 새빨갛다. 일어난 모든 일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비통해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슬픔의 작디작은 배들이 아닌가. 어두운 가을을 헤치며 이 먹먹한 정적을 떠돌아다니는 작은 배…"


그때 메모해 둔 문장 중의 일부를 다시 읽어본다. 이 문장을 메모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다. 하긴, 인생이 선명하지 않은데 1년 전에 읽고 메모해 두었던 문장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그 글을 읽었는지 떠오른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자기 탓이라고 심한 자책으로 비통해하는 그녀. 정도의 차이만 있지 소설에 등장하는 그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무슨 차이가 있을지. 우린 모두 슬픔을 싣고 다니는 작디작은 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어둠 속에서 먹먹한 정적을 떠돌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때로 시간의 흐름에 맡긴 채 아무 초점 없이 있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시간이 나를 치유해 줄 수도 있으니까.


소위 멍 때리는 시간, 무용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그 시간을 뭔가로 채우려고 애썼던 지난 시절, 만용 비슷한 욕심이기도 했고 넘치는 의욕이기도 했던, 그 뭔가를 하려고 했던 기억이 인생의 무게로 남아 지금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끝 모를 곳을 향해 치닫기만 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 건 이 문장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미래를 기대했다기보다는 미래에 향수를 품은 것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 다가올 것이 현실에서는 이미 가버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갑자기 이것이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인다. 내가 고대했던 것은 실제로 미래였을까, 아니면 미래 너머의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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