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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13. 2024

변하지 않고 흐르지 않는 걸 사랑했지만

"변하지 않고 흐르지 않는 걸 사랑한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도, 시간도 내 작품엔 없다."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서 주인공 최웅(배우 최우식)이 한 말로 기억한다.


애증이 교차하면서 사랑에 빠졌으나 이젠 헤어진 국연수(배우 김다미)를 잊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나무와 건물만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주인공.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왜 변하지 않고 흐르지 않는 걸 사랑하고 싶은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말이다. 변덕 많고 처음의 감정을 지키지 못하는 상대에게 환멸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이 말이 틀렸다고도 맞다고도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사람도 변하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시간마저도 변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변하지 않고 나에게 머무는 것을 사랑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변하는 데 다른 사람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리석은 기대였지만 그런 기대를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미련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부하지만.  


한편 우리에게 사람이나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시간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이 없다가 생기는 것도 그 변화의 일환일진대, 변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생각의 주체인 나도 변하니 다른 사람들이 변하지 않기를 바랄 수 없는 노릇이다. 흘러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변하다가 끝내 사라진다. 소멸하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곧 잊힌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도. 변하는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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