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살다 보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질 때가 있다. 계속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나아가자니 가야 할 길이 안 보이고, 돌아가자니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아쉽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라면 계속 가든, 돌아가든, 아니면 그만두든 상관이 없겠지만. 상대가 있는 거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한 주를 보내고, 다시 토요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 온 뒤라 그런지 공기가 한결 선선하다. 어느덧 여름은 저만큼 가버린 것 같다. 가는 계절을 붙잡을 수도 없고, 하긴 덥다고 투덜거릴 때가 언제였는데 이렇게 아쉬워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참…이게 무슨 때늦은 후회람, 하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디 계절만 그런가. 사람과의 인연도, 만남도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한 번 시기를 놓쳐 버리면 다시 어떻게 하기가 쉽지 않다. 노력의 범위를 벗어난 문제가 돼 버리고 만다.
나이가 들어가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난다. 그게 죽음이든, 이별이든. 받아들이기 어려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개는 전자지만. 그때는 상실감이 무척 크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를 떠나야 할까, 이런 생각까지 미치면 힘들다. 언제까지 계속될 수 없는 게 삶이지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마지막 장면, 죽을 때를 직감하고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는 주인공 정원. 그전에 사랑하는 여인 다림이 보낸 편지를 뒤늦게 발견하고, 답장을 전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더 이상 없다. 어쩌면 그는 그녀를 위해 편지를 간직하고 말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나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다림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정원,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그의 눈빛과 창가에 어린 그의 손짓에 배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렇게 그는 쓸쓸히 가고 말았다. 사랑하는 이와 소중했던 인연을 뒤로한 채.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