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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02. 2024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찾아오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는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러시아군 총사령관의 부관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한 안드레이 공작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싸움을 이끌다가 큰 부상을 입고 전투 현장에 쓰러진다. 다시 의식을 되찾은 안드레이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나 누가 이겼는지가 아닌 드높은 하늘이었다.


무한한 하늘은, 혼란스럽고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쟁 상황과 대비되어 인간 삶이 얼마나 헛되고 덧없는지를 깨우쳐주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독백한다.


"참으로 조용하고 평온하고, 장엄하다. (...) 우리가 적의와 공포에 불타는 얼굴로 뛰고 소리치고 싸우던 것과는 전혀 다르구나. 어째서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정말 행복하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귀족 신분으로 부와 명예를 가졌건만, 뭐가 부족한지 전쟁까지 나가 공을 세우고 싶었던 안드레이. 세속적인 욕망과 성공적인 삶을 추구했던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올려다본 하늘, 그 하늘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죽음이 눈앞에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동안 자신의 삶의 전부라고 믿어왔던 명예, 부와 욕망 그리고 인간적인 출세와 성공이 헛되게 여겨졌다. 그는 그동안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던 하늘의 숨겨진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가 회심하는 계기 중의 하나는 바로 우리가 흔히 보는 푸른 하늘이었다.


한동안 비와 눈이 오는 흐리고 궂은 날씨, 문득 해가 그리워졌다. 없어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 안드레이 공작처럼 평소에는 별 신경을 쓰지도 않던 한줄기 햇빛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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