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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16. 2024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정소현 ㅡ 그때 그 마음

"한 번쯤 댓글을 달아줄 법도 한데 그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망은 사랑으로 변질되었고, 그와 동시에 외로움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를 생각하면 들떴다가도 금세 쓸쓸해졌고, 차라리 그를 몰랐을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가 자신의 빛났던 과거와 사랑을 빼앗아 간 듯한 착각에 원망도 했다.


집에 있을 때, 산책할 때, 밥 먹을 때, 일할 때 혜성은 너무도 혼자라는 것을 절감했다. 혜성은 그 널뛰는 마음이 낯설지 않았다. 겨우 떼어버린 병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외로움은 혜성의 고질병이었다."



2022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정소현 작가의 <그때 그 마음>에 나오는 글이다. 가족에 대한 상처로 폐지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혜성, 그녀는 '최대한 쓸모없는 아름다운 걸' 사는 데 돈을 써버리는 친구 순정과 다시 만나면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순정과 우연히 들른 전시장에서 본 그림, 그 그림을 사기 위해 화가의 블로그를 찾아 읽다가 그의  첫사랑이 어릴 적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존의 조건이자 루틴한 삶의 표상이었던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그의 블로그를 매일 읽어나간다. 때로 댓글도 달면서.




"혜성은 그의 글 속에서 자신일지도 모르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발견했고, 그와 자신의 비슷한 부분을 찾아냈다. 자신과 다른 시간, 같은 길을 걷고 있던 그를 발견하고 그곳에 가닿지 못했던 시간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과거와 자신의 과거가 맞닿거나 엇갈린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에 쿵 하고 울리는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애써 비워놓은 마음과 시간이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를 그렇게 끊임없이 생각해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인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묘사한  이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시작은 찰나의 느낌이지만 무엇보다 ‘생각’이라는 것, 즉 그 사람에 대한 집요한 몰두이고 몰입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그에 대한 생각으로 채우는 것,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그 생각 속에서 혼자 묵묵히 견뎌야 하는 인내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특히 늦게 시작한 사랑일수록, 혼자 살아야 했던 시간이 길수록 그 강도는 세진다. 사랑이 힘든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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