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거리 곳곳에 만개한 벚꽃. 매년 이맘때면 보게 되는 꽃이지만, 굳이 사람에 빚대 말하자면, 그 자태나 기품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녀린 꽃들이 마치 군락을 이루어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곧 떨어질 듯 위태롭게 머리 위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그 앞에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었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 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 나오는 글이다.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분명히 있다. 그때 전달되는 것은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꽃 피는 아름다운 봄에 대해 오래 기억하고 싶으면 뭔가 구체적으로 남겨야 한다. 추상적인 것은 오래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봄이네. 좋다. 아름답다. 꽃이 예쁘네.' 이런 말들은 이 봄이 가기 전에, 아니 말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작가의 말대로 어떤 것을 보았는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보다 그 순간 누가 내 옆에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겨야 한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에 대해 기억하고 싶다면,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함께 본 영화, 같이 공유하며 읽었던 책이나 들었던 음악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언젠가 다시 한번 그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먹고 영화를 보게 되면, 함께 했던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벚꽃이 핀 길을 걸으며 지난봄을 생각했다. 여전히 추상적인 기억뿐이다. 벚꽃이 지면 이 봄도 함께 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지금 보고 느끼는 이 모든 찬란한 봄의 순간을 구체적인 기억으로 명징하게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