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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pr 25. 2024

그들은 어쩌다 헤어졌을까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겪었던 일을 기술한 단편. 정영수 작가의 소설 <내일의 연인>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동네 누나인 선애. 주인공은 그녀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집이 나갈 때까지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라는 부탁을 받고 그 집에 들어간다.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인 지원과 함께 지낼 공간을 찾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는 선애가 살았던 그 공간에서 부부가 겪었던 여러 상황과 감정에 부딪히게 된다. 아직 결혼 전이지만 지원과 함께 지내면서 신혼부부 같은 느낌도 갖게 되었다.


소설의 핵심은 오늘의 연인이었던 부부가 더 이상 혼인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남이 되어버린 현실이 과연 그 부부만의 일일까 하는 점이다. 오늘의 연인이라고 해서 내일까지도 연인일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왜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이 식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삶이 그들을 변화시킨 탓일까.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 나는 그 말에 대답하려다, 곧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냥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다시 찾아온 침묵 속에서, 나는 새삼스레 내가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창가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점점 아득해졌고, 나는 문득 끝나지 않을 시간에 갇혀서 텅 빈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왠지 그 밤은 영영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것은 내게 앞으로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을 무수히 많은 행복한 시간들과 외로운 시간들의 징후처럼 느껴졌다. 나는 비스듬히 누운 채 아직 잠들지 않았을 지원의 윤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유령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72p)




공간에 딱 맞는 고급스러운 장식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좋은 집에서 부부는 잘 살지 못하고 헤어졌다. 공간과 삶의 편의를 뒷받침하는 각종 가구나 도구들이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삶의 조건이 어려워도 굴하지 않고 사랑을 지켜내는 사람들 말이다.  


만나는 이유는 각각이지만 헤어질 때는 비슷한 이유로 헤어진다. 사연은 다르지만 '성격 차이, 배우자의 부정, 기타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 등 이혼 사유는 단순하다. 사연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마는, 법에서 정한 이혼 사유가 저렇게 단순한 것은, 구구절절 사연을 말하면 대개 상대방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분쟁이 끝도 없이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가 '내일의 연인'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들 역시 흠이 많은 가정 속에서 태어났고, 어느덧 부모의 단점을 그들도 닮아가고 있다는 고백까지 감안하면 이 질문에 그렇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우리 모두는 흔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남긴 흔적, 세월이 준 흔적, 인간이라면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흔적, 그리고 상처들.... 상처와 세월의 흔적을 통해 삶이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그 상처로 인해 삶이 해체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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