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Apr 28. 2024

내 육체만큼만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이 추운 겨울날에도

식지 않고 잘 도는 내 피만큼만

내가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내 살만큼만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내 뼈만큼만 내가 곧고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 이제 아름다운 어른으로

저 살아있는 대지에다 겸허히 돌려드릴 텐데

돌려드리기 전 한 번만 꿈에도 그리운

네 피와 살과 뼈와 만나서

지지지 온 땅이 으스러지는

필생의 사랑을 하고 말 텐데



<문정희 _ 나의 육체의 꿈> **




부드러운 사람이 되긴 어렵다. 내면이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주변 사람들의 허물과 실수에 너그러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곧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스스로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내 뼈나 살만큼 곧고 단단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을까. 내 피만큼 따뜻한 온기를 지니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나는 피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드럽지도, 단단하지고, 따뜻하지도 못했던 지난 시절, 필생의 사랑을 하지 못했던 건 그 이유 때문인지도.  








** 소개한 시는 2001년 9월에 출간된 문정희 시인의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에 수록된 '알몸 노래 ㅡ 나의 육체의 꿈'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쯤 목마름 없이 너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