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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11. 2024

사랑은 끝까지 기다리는 것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싶을 정도로 헤어지기 싫은 사람이 있다. 헤어질 때 뒷모습을 보면서 못내 아쉬워하거나, 문자를 주고받다가 차마 먼저 그만하자고 하지 못하거나, 잘 들어갔는지까지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이미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은 어찌나 짧은지, 헤어져 있는 시간은 왜 그렇게 길기만 한지…그런 시간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은 깊어진다. 롤랑 바르트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그 사람의 不在다. 부재의 시간 동안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그 사람이 없는 시간을 견딘다. 역설적으로 그가 없는 시간을 통해 사랑이 깊어지고 증명되는 거다. 부재의 시간을 견뎌내야 비로소 사랑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다림의 유익은 그 시간을 통해 불순물들이 빠져나가고 순전한 것만 남는다는 거다. 그를 향한 내 감정의 실체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마저도 다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제대로 기다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렸을까? 지루해하면서 빨리 지나가지 않는다고 안달하지는 않았을까. 불평불만을 하다가 그 사람을 만났을 때 퉁명스럽게 대하지는 않았을까. 사실은 보고 싶었으면서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은 기다림을 통해 성숙해진다. 기다림의 최대치까지 가보면 '나'라는 사람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때가 바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기다림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그 힘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나는 이제 희망하는 것이다. 기다림을 통해 내 자세와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기를. 여전히 기다려야 한다면 더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기를.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주어진 삶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황동규 ㅡ 즐거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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