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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27. 2024

더디게 아물던 상처도 그리울 때가 있으니

2018년 4월 8일이었으니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지방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다시 근무할 때였다. 그날 내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러 가는 길. 휴일인데도 전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혼잡한 전철 안에서 눈도 아직 다 낫지 않았는데 괜히 나왔나 싶어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영화배우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이 처음 만든 영화라고 하니 미루지 말고 지금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았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다만 주인공 크리스틴(배우 시얼사 로넌)의 학창 시절을 다 보여주려다 보니 전개가 다소 빠르게 느껴졌다. 그녀의 시절을 깊이 있게 그리지 못하고,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오히려 제대로 된 하나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어쩌면 주인공이 부모에게서 빨리 벗어나려는 장면에 치중하다가 과속한 탓도 있겠다. 성급하게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크리스틴의 반항과 좌충우돌 그리고 모험. 바로 우리가 살아왔던 그 시절을 크리스틴도 살아내야 했다.


누구나 젊은 시절, 특히 학창 시절은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그때가 가장 인생의 황금기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공부에 대한 부담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이 뉴욕으로 가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았던 새크라멘토의 진면목을 깨닫듯. 우리는 늘 한 발 늦게 깨닫는다. 어쩌면 그게 인생이며, 우리의 한계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틴은 자신이 살던 새크라멘토를 자동차로 지나간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녀 또한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어머니의 삶을 자신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자신의 삶이 어머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역시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영화 속 인상 깊은 대사. 영화에서 신부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진실한 것이 중요한 거지.”


살다 보면 옳은 길로,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한다. 그 순간에도 중요한 건 그 상황에 진실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진실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나는 그동안 내 삶에 진실했을까?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18. 4. 18. 쓰다>

일기에 쓴 글치곤 좀 길었다. 조연으로 나오는 카일 역의 티모시 샬라메의 초기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기가 있지 않았으니, 그를 캐스팅한 감독 그레타 거윅의 눈썰미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골든 글로브 작품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으니 좋은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지금은 영화 내용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장면장면과 감독의 의 도를 통해 영화를 보고 난 후 내면이 더 풍부해졌을 것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내 어린 날의 숲!!" 더디게 아물던 청춘의 상처도 언젠가 그리울 날이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때 했던 질문은 지금을 사는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지만. 다만,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나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떠나, 매 순간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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