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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3. 2024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

요즘은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다. 내 취향에 맞는 영화나 시리즈물을 찾기 어려워서 구독을 끊었다. 우리나라 영화든 외국 영화든 볼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보고 나면 머리가 멍해진다. 뭔가 힐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문제를 떠안는 느낌이다.


두 달 전쯤에 쓴 글에서도 내 취향을 잠깐 언급했듯이, 안 그래도 피곤한데 굳이 영화까지 그걸 감수하면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야쿠쇼 코지(68세)가 주인공(히라야마)으로 나오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 2024>가 개봉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떤 기쁨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완벽한 날은 없어도 완벽하다고 믿을 수 있는 날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쉘 위 댄스>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했던 야쿠쇼 코지라는 대배우 덕분에 가능한 영화인데, 그만큼 그의 연기는 빛난다.

영화를 보면서 무엇이 '퍼펙트 데이'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 히라야마의 반복적인 일상, 즉 아침 일찍 출근해 자신의 일인 화장실을 청소하고 퇴근 후 서점에서 산 문고판 책을 읽는 모습이 잔잔하게 반복된다. 하지만 장면 사이사이에 반짝이는 순간들이 숨어 있다.


출근길 차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패티 스미스, 루 리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 점심시간 공원에서 집에서 싸 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낡은 카메라로 하늘과 나무와 꽃을 찍는 순간, 익명의 화장실 이용자가 숨겨 놓은 쪽지에 암호를 적으며 소통하는 순간 등이다.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주인공은 자주 미소를 짓고, 매일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자신만의 '퍼펙트 데이'를 만들어간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이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누워서 책을 읽는 장면이다. 어찌 보면 지루한 일상이지만, 그는 그 일상에서 자신만의 기쁨을 찾는다. 그동안 지루하다고, 매일매일 사는 게 똑같다고 불평했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로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배우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스캔들 한번 일으킨 적이 없는 그였기에,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주인공의 삶은 '완벽한 날들'이라는 제목과 달리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 때문이다.


영화에서 변기 아랫부분까지 거울로 비춰가며 열심히 청소하는 히라야마에게 젊은 동료 다카시는 이렇게 핀잔을 준다. "히라야마씨,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변기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 말이에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틀렸다. 적어도 히라야마에게는 그렇다. 곧 더러워지더라도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보석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비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순간일지라도. 어쩌면 그 순간들이 바로 진정한 '퍼펙트 데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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