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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02. 2021

산다는 건, 기억하는 것

김연수 / 지지 않는다는 말

얼마 전 날짜를 확인하려고 휴대폰의 달력을 봤다. 9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벌써 9월이 다 간 것이다. 세월이 빠르다는 진부한 말 대신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나는 9월 한 달 동안 뭘 했을까. 기억에 뚜렷이 남는 게 없다.

기억에 남는 게 없다는 건,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겠다. 삶은 반복되는데, 같은 일이 반복되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뭔가 기억할 만한 경험을 해야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기억할 만한 경험은 스스로 만들어야 더 기억에 남는데, 나같이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걷는 것은, 어쩌면 살아 있음을,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에 뭘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걸어서 건강해지는 것은 부수적인 결과일 뿐, 걸으면서 내 몸의 감각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시간들은 반복되어도 기억에 남는 편이다.

그럼 꼭 몸으로 뭘 해야 기억에 남는 것일까.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기억에 새길 수는 없는 것일까. 감명 깊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랬던 적도 있었다.





우연히 잔나비의 이 곡을 들었다. 처음에는 선뜻 와닿지 않았지만, 몇 번 들으니 괜찮았고, 다시 더 들으니 좋아졌다. 9월 마지막 주를 생각하면 이 곡을 들었던 게 기억날 것 같다. 그렇게라도 추억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https://youtu.be/nkyRnKXUflI

“달리기를 끝낼 때마다 나는 어마어마한 만족감을 느끼는데 그건 단지 계획대로 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에서 초월한, 더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달리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잠을 자면서 달린다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잠을 자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틱낫한 스님이 전하는 베트남의 속담은 다음과 같다. "공동체를 떠난 수행자는 파괴될 것이다. 산을 떠난 호랑이가 인간에게 잡히듯이." 내 식대로 고치자면,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라.”

<김연수 _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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