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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30. 2024

무더위 속에서 만난 삶의 스승들

최근 너무 더워서 주말에는 아파트 1층에 있는 카페만 찾고 있다. 오후 내내 같은 카페에 머물다 보니,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누가 오고 가며, 어떤 음료를 마시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눈에 띄었고, 그들이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한쪽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몸이 불편한 듯했다. 그녀는 오후 3시쯤 카페에 와서 늘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특별히 뭘 하는 것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커피를 마실 뿐이다.


만약 그녀가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카페에 약 1시간가량 머물다 떠났다. 그녀에게는 그 1시간이 마치 무한의 시간인 것처럼 보였다.


말없이 음료를 마시는 그녀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내가 저 여인처럼 몸 어딘가가 불편해서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집에 틀어박혀 신세한탄이나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에 비해 그녀는 불편한 몸이라도 카페에 나와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작은 일상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문득, 종종 삶이 무료하다고 불평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에게는 당연했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일 수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 한 명, 70살은 족히 넘은 여성이 카페 한구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을 열심히 그린 후엔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그녀는 내가 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집에 갈 때까지도 여전히 그곳에 머물렀다. 아마 하루 종일 카페에 있는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심히 색을 칠하고, 그림도 그리고, 책을 읽었다. 그녀를 보면서 책을 읽다가 지루해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한편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노년의 자신을 견디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에 묘한 연민이 일어나기도 했다.  


내 주변에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들은 대인관계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나름 즐겁게 살아간다. 그들을 보면서 가끔은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곤 했었는데. 하지만 카페에서 만난 이 두 사람을 보며 그런 내가 참 어리석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내가 사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내 삶이 가치가 없거나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나를 온전한 ’나‘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어느덧 카페에서 본 그 사람들을 통해 나는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있었다. 인생의 스승은 멀리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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