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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06. 2024

진정한 피정(避靜)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여름휴가 동안 템플 스테이, 일종의 피정避靜을 다녀올 계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적한 사찰에서 일주일간 머물다 오겠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굳이 귀한 휴가를 그렇게 보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렇게 반응한 데는 내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오래전에 나도 피정을 해 본 적이 있다. 2014년 여름, 마음이 복잡하고 지쳐 있던 시기에 처음으로 피정을 떠났다. 나를 힘들게 하는 현실과 분리된 어딘가로 떠나면 내면의 평화가 찾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때의 경험을 글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마음의 평안이나 고요를 찾지도, 번뇌나 고민을 떨쳐내지도 못했다. 마음이 정화되는 순결한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장소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피정을 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맞는 상황 변화는 그곳이 아무리 평화로운 곳이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쁜 경험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서 세상으로부터 나를 고립시켰어야 했나 하면 지금도 회의적이다.




그때의 경험을 곱씹으며 깨달은 사실은, 피정의 진정한 의미는 장소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고요한 산속에 들어가도 그곳에서 진정한 피정을 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이러한 깨달음 때문에 지인에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물론 그가 나와 달리 제대로 된 피정을 했으리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피정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피정 전과 후, 나와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물론 꼭 무언가 달라지기 위해서 피정을 가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쉬러 갈 수도 있고,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머물면서 심신을 풀어놓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굳이 사찰에서 하는 템플 스테이나, 수도원이나 교회처럼 거창한 이름이 붙은 곳을 찾을 이유는 없다.


진정한 피정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집에서든, 시끄러운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통 한가운데서든, 내가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디서든 피정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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