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무척 잘 받았던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때 기이한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내 유년기의 태양도 저물어버렸다. 그래서 내 기억의 골짜기와 협곡 속에 어머니의 흔적은 없고, 다만 과거의 캄캄한 어둠 속에 한 가닥 온기로 남았을 뿐이다.
아마 여러분도 아시리라. 어느 여름날 해 질 무렵 꽃이 만발한 산울타리와 작은 날벌레들 위에 잠시 머무는 향기로운 빛, 혹은 산책길 어느 언덕 밑에서 문득 마주친 마지막 햇살, 그 솜털 같은 온기와 황금빛 날벌레들을."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로 시작되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논쟁적이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하다. 늦여름 해 질 무렵,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날 저녁은 마치 나보코프가 묘사한 그 여름날의 해 질 무렵과 닮아 있었다. 빌딩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내 앞에서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나보코프처럼 이 상황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비록 그런 능력은 없지만,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름의 어느 날이 그렇게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그대도 아시리라. 여름이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을. 지는 해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서서히 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