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롤리타는 여전히 무사하고 나도 무사하다. 내가 미친 듯이 소유해 버린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창조물, 상상의 힘으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롤리타, 어쩌면 롤리타보다 더 생생한 롤리타였다. 그녀와 겹쳐지고 그녀를 에워싸면서 그녀와 나 사이에 두둥실 떠 있는 롤리타, 아무런 의지도 의식도 없는 ㅡ 아예 생명도 없는 ㅡ 롤리타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ㅡ 롤리타, 103쪽>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진다. 함께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든 순간에 그 사람만을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이런 강렬한 느낌이 없다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의 감정을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너무 사랑하게 되면 내가 과연 그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를 사랑하는 내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그의 이상적인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형상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감정이 깊어지면 결국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다.
나보코프의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 그는 롤리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문제는 그 사랑의 감정이 서로에 대한 교감 없이 혼자서 하는 일방적이었다는 점이다. 롤리타는 그가 느끼는 감정이나 집착의 이유를 알지 못했고, 그 역시 그녀와 진정한 교감을 나누지 못했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롤리타에 빠져 있었던 거다.
험버트가 사랑한 것은 실제의 롤리타가 아닌, 자신의 욕망과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롤리타였다. 그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환상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과연 이것이 험버트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 자체가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상대의 이상적인 이미지에 더 집착할 때가 있다. 혹시 지금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헷갈린다면, 나만의 감정의 덫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인간적인 약점이나 결점 또는 단점을 지닌 그를 온전하게 사랑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