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매도해 대는 이런 식의 대화는 나를 피곤하게 한다. 땅을 제거한 채 하늘의 풍경에만 한눈을 팔고 있는 넋 나간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 반대편의 사람들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말해져 해질 대로 해진 식상한 관용어구들을 마치 자신의 획기적인 발명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어놓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공연히 그 양극의 틈바구니에 잘못 끼어들어 비참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그들의 신념, 그 신념의 견고함이 무서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글은 이승우 작가의 소설 <고산 지대>의 한 장면이다. 소설은 군부 독재 시절 신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당시 대학은 행동으로 신념을 관철하려는 사람들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소극적인 방법, 즉 자신의 삶으로 저항하려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신학에만 몰두하는 학생들과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는 운동권 학생들이 섞여 있었고, 주인공은 그 중간에서 방황하는 신학생이다. 인용한 부분은 운동권 핵심 인물인 대학 동기에게 거친 말을 듣고 주인공이 생각에 잠기는 장면이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차라리 행동하는 것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오히려 행동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 큰 어려움이 따랐다. 가장 큰 고통은 외부의 충격이 아닌,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자신이 소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어떤 삶의 방식이 옳은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신념과 소신을 관철하는 방식이 다르다. 신념이란 그 자체로 신념일 뿐, 제3자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자신이 믿는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시간이 흐르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무엇이 옳았고 누가 비겁했는지 드러날 것이다.
이 단편을 읽고, 요즘 시대를 떠올렸다. 여전히 목소리가 크거나 자기주장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이 진보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더 세련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주장하고 관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