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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May 21. 2022

홍천 가리산, 전투 중인 해병대 선배들을 만났다


홍천 가리산(높이 1051미터)을 오르다가 갑자기 울컥해졌던 사연이다. 가리산 등산로와 정상에는「해병대 전적비」가 있다. (자연휴양림-가삽고개-2봉-3봉-1봉, 한 바퀴 8km, 3시간 30분)       


원래 ‘가리’란 말은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를 차곡차곡 쌓아둔 큰 더미라는 순수 우리말이다. 여기 가리산도 봉우리가 노적가리처럼 고깔 모양으로 되어 있어 가리봉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1봉(정상)과 2봉, 3봉이 있다.          


강원도에서 제1의 전망대로 불릴 만큼 조망이 뛰어난 곳이고, 소양호를 비롯하여 북쪽으로 향로봉에서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뻗는 백두대간이 보이는 곳이니 군사적 중요성이 뛰어난 곳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서로 차지하려다가 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쳤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니까 1951년 한국전쟁 때 여기 가리산 제1봉 제2봉 제3봉에서는 우리 측 한국군, 미군과 북측의 인민군, 중공군이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주위를 관측하는데 유리한 감제고지 확보를 위한 고지전이다. 해병대 1연대는 많은 적을 사살하고 무기를 획득하는 전적을 올렸다.       


나는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김포 강화지역에서 해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여기에 처음 온 것은 해병대 전승지로 지정되어 있는 까닭에 1981년 말 전적지 탐방을 하다가 들렀다. 2016년 겨울, 해병대 제대 후 32년이 지났고, 처음 가는 산도 아닌데, 아무런 느낌이 없다가 갑자기 어떤 환상이 떠오른 것이다.      


마치 최일선 전투현장에 있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왔다. 이건 데자뷔(deja-vu), 실제 체험하지 못한 상황인데도 전에 체험한 것으로 느껴지는 현상, 기시감이라도 한다.      


이곳에 ‘해병대 1연대 전투지역’이라는 기념비가 있다. 나도 해병대 제1연대 11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했으니 바로 내 부대의 30년 선배들이 싸우던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목숨을 잃은 곳, 나보다 한 세대 앞의 사람들이 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따져보니 가리산 전투는 1951년, 내가 이곳에 처음 온 때가 1981년이니 30년이 지났다. 그후로도 다시 35년이 지나 2016년 겨울인데, 등산로의 나무와 바위마다 세월만 무상하게 지나간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 싸우다 죽어간 모든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고지에서 전투 중인 해병대 선배들을 만났다              


무엇을 지키려고

얼음밥 먹으며 제1봉, 제2봉, 제3봉 올랐을까

외세의 잣대로 그려진 38선

여러 나라 군인들 모여 세계 평화의 합창이 아니라

서로 죽이려고 총부리를 겨누었으니               


문득 안내문에는 해병대 제1연대 전투지역(1951년)     

나도 한때 해병대 청룡부대 1연대 11중대 소대장이었다(1981년)          


고지로 오르는 전진과 후퇴, 은폐엄폐와 각개전투, 수류탄과 박격포탄, 조명탄

전진과 후퇴, 삶과 죽음 그리고 다시 전진, 마침내 고지에 올랐다

우리가 이겼다!!!     


전에 여기 왔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나이 먹어가며 무언가 감수성이 달라졌는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여기서 싸운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2016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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