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수 May 22. 2022

삼성산 국기봉에서, 나는 굳게 맹세하였다

나는 1주일에 한두 번은 산에 오른다. 약속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혼자 산에 간다.  나는 이것을 산을 오르며 심신을 닦는 선(禪),  말하자면 행선(行禪)이라고 정의한다. 젊은 시절에도 등산을 좋아했지만 그것은 그저 여가활동이나 취미였는데, 나이 육십을 넘고나서도 여러해째 계속하는 산오르기는 일종의 ‘걷는 참선(參禪)’, 자아수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로 집에서 가까운 관악산이나 청계산에 가는데, 집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관악산이 편하다. 관악산은 삼성산과 이어져 꽤 넓은 지역인데, 그 안에는 여러 봉우리, 능선, 골짜기, 암벽, 오솔길 등 산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거기다 둘레길도 다양하다. 내가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관악산이 있어 기쁘고, 늘  감사드리고 있다.     


전에 관악산에 관한 글 등으로『연주대 너머』를 펴냈다(2019). 여기에 연주대를 묘사한 시들이 있다. 제목을 소개하면, 연주대(그래, 너를 사랑했었다), 연주대(호젓하고프다), 연주대(내년은 진짜배기), 연주대(지붕이고 싶었다), 연주대 판타지, 연주대(기억의 터에서) 등이다.      


그런데 산은 같은 코스로 다니더라도 계절이나 시간, 또는 동행이 누구인지 등에 따라 늘 달라진다.  나는 매주 산행에서 가급적 다른 코스, 다른 목적지를 잡으려 노력한다. 주로 가는 코스는 방배동 집에서 사당역 거쳐 연주대에 오르는 코스다. 방배동에서 사당역까지 약 1.5km, 사당역-연주대 구간이 5km니까 왕복하면 총 13km, 4~5시간 걸리고, 정상 연주대에서 여러 하산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어느 늦가을 오후였다. 서울대 입구 쪽에서 삼성산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길이 없어져 버렸다 (익숙한 산에서도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암벽을 넘고 낯선 비탈을 오르며 한참을 헤매다 보니 우연히 국기봉에 이르렀고, 거기서 무언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해가 늦가을이 다 되었는데 한해의 성취가 무어였지 하며 스스로 불만을 가진 나 자신을 다잡이하려 한 것같다.     


오랫동안 백수로 사면서, 왜 빨리 돌아오지 않니 하며 나중에 저세상에서 추궁할 것에 대비해서 적어도 일 년에 한 권은 책을 내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나는 이 약속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째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08년 출간한 자서전부터 내가 출간한 책이 시집 3권, 에세이 3권이 되었다.      


올해도 글쓰기 시작은 했는데, 요즈음 나의 뮤즈는 화가 났는지 전혀 오지 않는다. 정치사회쪽 에세이도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그저 그렇다. 올해도 이 맹세는 꼭 지켜야 할 텐데 걱정이다.            


삼성산 국기봉에서     


미세먼지 없다는 일기예보에 일요일 오후 삼성산에 올랐다. 길 잘못 들어 아무도 없는 낭떠러지에서 나무뿌리 잡고 구르다 깔딱고개로 오르다 보니 웬걸 국기봉이다. 팔봉능선 5라는 팻말이 보였고, 헤매고 헤매다가 내가 국기대에 게양되어 버렸다.     


문득, 나중 저세상에서 도대체 뭘 하다 늦었니 물어볼 테니, 적어도 1년 한 권은 책을 남겨야겠다고 맹세했다.     

 

* 2017년 늦가을(?)

매거진의 이전글 홍천 가리산, 전투 중인 해병대 선배들을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