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눈(新雪) 이야기

by 신윤수

1.

눈이 오른다

바람 타고 눈이 오른다

영하 25도의 지상을 피해 눈들은

따뜻한 하늘로 비상한다


2.

눈을 만나러 나간다

새 눈을 만나러 간다

하얀 첫 호흡 태고(太古)를, 높은 곳에서 바라본 ‘새의 눈(bird eye)’ 태고(太高)를 만나러 간다

그의 심장(heart)을 열어보았다. 하얀색, 분홍색 그리고 무지개빛의 하트를

수억 광년(光年) 블랙홀(black hole)에서 달려오며 만든 하얀 육각형(white hexagon)

예쁜 모양을 만들었으니 마음도 고왔겠지


3.

새 눈(新雪)을 만져 보면

막 내리는 눈이나

지상에 쌓인 눈을 맨손으로 살짝 훑으면

눈이 아스라하게 슬그머니 실핏줄을 건드린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살갗을 스치는 느낌

하얀 오르가즘(orgasm)

빅뱅 전 절대온도 마이너스 273도의 원시(原始)가 그대로

지구 최초 바다의 옅은 비린내가 그대로

어렴풋하게 살짝 스쳐간 첫 키스가 그대로

새 눈은 내가 감히 알지 못하는 무엇이다

4.

새 눈(新雪)을 밟아보자

눈을 밟는 건 하늘로 가지 못하게

이무기가 용(龍) 되지 못하게

간섭하고

억압하고

꼬드기는 것이다

땅에서 녹아 물로 흐르라고

개울로 강으로 바다에 갔다가

저 하늘 구름 되라고


(우면산 소망탑)

(우면산 관문사)


5.

거실에서 늘 마주보는 나의 아사달(阿斯達), 우면산 소망탑이 새해를 맞아 예쁘게 눈 단장을 했다.

다시 무너지지 말아라. 소망탑아.

그리고 내 새해 소망을 담아 세번 돌았다.

작년 호우에 무너진 관문사 쪽 등산로를 내려갔다. 능선에서 700미터 밑의 관문사 가는 길.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이리 고운 새 눈길을 밟다니, 눈에게 하늘에서 땅에 오는데 오래 힘들었을 눈에게 미안했다.

관문사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올라가는데 문득 이상했다. 고라니다. 여기서는 처음이다. 어떤 시선이 있어 문득 3시 방향을 보았다. 처음엔 조각품인 줄 알았다. 70미터쯤에 뭔가 있었다. 그는 군대에서 은폐 엄폐에 숙련된 보초가 그러듯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집중해서 바라보니 조금씩 움직이는데 마치 저격병이 몰래 사격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하고 문득 소름이 들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꺼내는데 갑자기 능선 너머로 달아났다. 아 나의 민망함이여.




6.

왕복 1.4킬로 한 시간 동안 새 눈을 밟았다

올라갈 때는 내려오다 남긴 발자욱을 밟았다

망가진 등산로니까

눈쌓인 길이 위험해서지만

새 눈을 다시 밟는 게 조금 미안해서




7.

세상에 고운

새 눈(新雪)이 내려

새로운 일이 되고

새로운 이야기 되려무나


그래서 새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면산 `눈 쌓인 계단`)


* 눈 밟은 일에 대하여 평생 가장 길게(?) 쓴 이야기

* 2023년 1월 26일 오후 2~5시, 우면산(소망탑, 관문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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