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수 Feb 12. 2023

탄핵은 새 역사의 시작

어느덧 한겨울 추위가 지나 남녘에는 매화도 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스 전기요금 등 생활물가 폭등으로 유독 추운 계절이 이제 끝나가는가? 마스크를 벗으니 숨 쉬는 게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탄핵이라는 드문 일이 있어 여기저기 좀 찾아보았다.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장관이 탄핵되었다고 한다. 수요일(2023년 2월 8일)에 국회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을 의결하였는데, 여기에 대한 대통령실의 발표문이 이랬다.     


“의회주의 포기다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살펴보려 한다. 

-----------------------------     


의회주의(?)     


우리나라에서 의회주의라는 말을 썼나? 내가 이제 구식이 되어서 이런 말이 생소한 건가? 나는 그저 모든 회의체는 의견이 맞지 않으면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원칙으로 알고 있었다. 가급적 소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건 맞지만 다수와 소수의 의견이 다르면 어쩌지?      


지난 대선에서 0.73% 차이로 갈렸지만 어쨌든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그 스스로 대통령으로 일하는 것 같은데, 원래 여소야대가 되어 있어 과반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국회의 의사를 정했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지 모르겠다.      


말 나온 김에 1년 전 대선 ‘TV 합동토론회’ 이야기 좀 하자. 4인이 출연해서 심야에 방영된 방송에서 마지막까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몰아세우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방송 후 새벽에  윤석열과 단일화한 것에 대해 나는 매우 불쾌했다. 그것은 시청자와 유권자를 우롱한 게 아닌가?      


현재 국회 의석을 보면, 제1당 ‘민주당’ 169석, 제2당 ‘국민의힘’ 115석이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여당이라는 115석이 제1당 169석에게 지는 게 당연한 건데, 여기에 무슨 ‘의회주의’ 포기라는 말이 나오나? 초등학교 반 회의나 등산모임의 의사도 이렇게 정하는데 말이다.     


탄핵안 결과를 살펴보면, 찬성 179표, 반대 109표, 무효 5표다. 국회 의석은 민주당 169석, 국민의힘 115석, 정의당 6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 무소속 7석이니, ‘국민의힘’ 115명 중 적어도 몇 명은 탄핵안에 동조하거나 기권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무슨 ‘의회주의’ 포기라는 말이 나오지?

------------------------     


탄핵새 역사의 시작     


나는 이번 고위 공직자 탄핵은 우리나라 헌정사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우리 헌법은 잘못 만들어져 대통령에게 지나친 권력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무총리(국회의 임명동의가 있어야 임명할 수 있다)를 제외한 나머지 국무위원은 인사청문회 결과에 관계없이(즉 다수결의 권한을 가진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임명할 수 있다. 직전 문재인 정부도 그랬지만 이번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의 부정적 의견을 무시하고 임명한 인사가 너무 많아졌다.     


이것은 5년간 대통령 무책임제’ 또는 ‘선거황제제에 다름아니다.


거기다가 이번 이상민 장관의 경우가 잘 증명하듯이, 국회가 과반수로 해임안을 의결하여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하였지만 대통령이 이걸 무시하였다. 이것은 민의를 무시한 게 아닌가?    


이렇게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5년간 황제의 권력을 부여한다. 여기서 독재로 흐를 수 있는 권력을 견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탄핵이라는 제도뿐이다.

     

* 나는 브런치에 「탄핵소추는 국회의원의 책무다」 (2023년 1월 13일)라는 글을 썼다.      


이번 이상민 탄핵은 1987년 현행 헌법 시행 후 36년, 아니 정부 수립 후 75년 동안에 처음 있은 사건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헌정사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국회는 앞으로도 고위 공직자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 이것이 100% 확실하지 않더라도, 의심스런 공직자의 직무집행을 중지시킬 수 있는 탄핵소추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국회(인사청문회)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장관을 임용할 수 있고, 국회의 해임 건의가 있더라도 해임하지 않을 수 있으니, 국회가 정부를 제대로 감시하려면 탄핵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      


헌법의 탄핵 조항을 살펴보자.     


헌법 제65조      

①대통령ㆍ국무총리ㆍ국무위원ㆍ행정각부의 장ㆍ헌법재판소 재판관ㆍ법관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ㆍ감사원장ㆍ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②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③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④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여기에 부연할 말이 있다. 국회 다수당은 책임을 지고 국회을 이끌어야 한다(책임의회제). 총선 등 정치적 일정에 관계 없이, 어느 고위 공직자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였다는 개연성이 크다면, 탄핵에 나서야 하고, 설사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양해해야 한다는 것이다.(헌재의 9인 재판관 중 6인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이 완성된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며칠 전 소개한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의  번역본에는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2018)      


이 책의 표지에 있는 글을 아래에 옮긴다. (사진 참조)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붕괴한다 


-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는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가?

- 선출된 독재자는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전복하는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구체적인 신호들

-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이 포퓰리스트와 손잡는다

- 정치인들이 경쟁자에게 반국가세력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결과에 불복한다

- 대통령이 의회를 우회해 행정명령을 남발한다

- 의회가 예산권을 빌미로 행정부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탄핵을 추진한다

- 정부가 국가기관을 여당 인사로 채우고 명예훼손 소송으로 비판적인 언론의 입을 막는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 제법 있지 않나? 이처럼 우리 민주주의는 지금 위기에 있다. 시민들은 지금껏   어렵게 지켜온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모두 나서야 한다. 

----------------------     


* 「매봉재산 30」은 정치·사회 현상에 대해, 어느 지공선사(地空善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사람, 가끔은 指空禪師)가 쓰는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