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에서 평화? 아니면 전쟁? (9편)

남과 북이 싸우면 일본이 이긴다

by 신윤수

이번은 그동안 한국전쟁에 관하여 기술된 책 3권을 읽고 느낀 점들이다.


책 3권이 각각 우리 공영방송(KBS), 미군(유엔군) 사령관, 일본 역사학자가 쓴 것으로 나름대로는 조화 있는 글 읽기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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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미중전쟁』 KBS제작팀 지음, 책과함께, 2021년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다. 이 책에는 「한국전쟁, 양강 구도의 전초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오산과 오판이 불러일으킨 70년 전의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오늘날의 새로운 미중전쟁에서 우리는 더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이 책은 전체를 오판, 충돌, 대치로 구분하였다. 요약을 그대로 소개한다.


오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 초기. 북한은 어떻게 미국의 영향권에 있던 남한을 침공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 신생국 중화인민공화국이 내상이 채 아물기도 전에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까닭은? 거기에는 여러 지도자들의 오산과 오판이 점철되어 있었다.


충돌


세계 3대 동계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를 비롯, 처절했던 1950년 겨울 한반도 북부 전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미군의 최강 화력이 산악지형에 무용지물이었던 반면, 중국군은 이미 국공내전으로 다져진 게릴라전의 베테랑이었다. 한편 진영을 막론하고 무서운 적이 있었다. 바로 혹한이었다.


대치


1·4후퇴 이후 38선 부근에서 벌어진 공방전. 전쟁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었고 한반도의 군인과 민간인은 지쳐갔다. 그렇게 시작된 정전협상. 그런데 중국과 소련은 전쟁이 계속되길 바랐고, 그 결과 협상은 2년 넘게 이어졌다. 그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전쟁은 이후 미국과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오늘날 신냉전이라고도 불리는 두 국가의 대치 구도를 우리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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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웨이의 한국전쟁』 매슈 B. 리지웨이 지음, 플래닛미디어, 2023


한국전쟁 때 맥아더의 후임으로 유엔군사령관이 된 리지웨이의 한국전쟁 보고서이다. 그는 맥아더의 후배로서 그를 존경했지만, 맥아더의 중국 본토 공격이나 원자탄 사용 등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1967년에 쓰인 것이다. 미군(유엔군) 사령관이 한반도와 한국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책인데, 무려 56년이 지나 번역되었다.


인상 깊은 구절들을 써 본다. <제1장 조용한 아침의 나라: 폭풍 전야>에서


한반도가 38선을 중심으로 분단된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38선은 단순히 군사적 편의 때문에 그어졌고, (23쪽)


미국은 한반도가 공격받게 되면 지원하겠다고 여러 차례나 약속했지만 1950년 6월 이전까지는 이 작고 불운한 나라를 이웃한 적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한 번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24쪽)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유순하고, 우호적이며 친절하고, 훈련을 제대로 받으면 훌륭한 군인이 될 잠재력이 있으며, 검소한 농부인 동시에 한 세기가 넘도록 일본 경찰의 잔학성을 여전히 기억하고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있는 맹렬한 애국자들이다.(26쪽)


미국의 한반도 불개입 정책은 1905년에 체결된 가쓰라-테프트 밀약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는 대신, 미국이 최근 극동에서 획득한 영토인 필리핀에 대해 일본이 어떠한 적대행위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30쪽)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국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르게 한반도의 남쪽을 떠맡게 되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사전 숙고도, 구체적인 계획도, 결과에 대한 계산도 없이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지 않은 신탁통치 이행 의무를 지키기 위해 남한에 왔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남한에 오자마자 큰 실수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신뢰와 협조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인들이 경멸했던 친일파 관료들을 정부 요직에 그대로 임명한 것이었다. (32쪽)


(한국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 단순히 우리의 능력이 부족했다거나 선견지명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딘 애치슨 장관이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면서 “불개입” 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한국전쟁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아주 단순화된 단순화의 오류다.

애치슨 국무장관은 이미 미국이 채택하고 있던 정책을 그저 언급한 것뿐이었다. 한반도는 언제나 미국의 방위선 밖에 있었고 미국은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수차례나 개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35쪽)


다음 장부터 전쟁의 진행과 전투상황을 다루고 있다. 당시 미국의 시각을 캐치한 몇 구절만 적어본다.


유엔은 단 한 번도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약속한 적이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처음으로 한반도에 낙관주의 분위기가 널리 퍼지게 되자 비로소 모든 적대세력을 파괴하려는 생각으로 38선 이북으로 작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한 후 유엔군사령부가 압록강으로의 북진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적이 없었다. 8군이 북으로 반격을 개시했을 때 우리는 “침략을 물리치고 이 지역의 국제 평화를 회복하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이전 상태로의 회귀와 불가피한 교착상태를 의미했다. (218쪽)


1950년 11월과 12월 기습 공격 당시 중공군이 북한에 있는 우리 군대에 대항하여 비밀리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을 때, 압록강 남쪽의 중공군과 그 북쪽의 군사기지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포함해서 공개적인 선전포고를 할 충분할 정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조치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쳤으나, 그러한 결정에 책임이 있는 미국 정부가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우리는 결국 인천상륙작전 이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한국에서의 우리의 목표는 침략을 격퇴하고, 침략자들을 추방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회복하고,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초기의 목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해 유엔의 대다수 비공산권 국가들도 동의했다. (324쪽)


제한전이란 국가이익과 현재 군사적 능력을 고려하여 목표를 분명하게 제한하는 전쟁이다. “승리”를 넘어서는 지리적·정치적·군사적 목표가 분명하게 기술되지 않은 끝이 없는 전쟁은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무한히 확대될 수 있으며 한 번의 성공은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계속해서 또 다른 성공을 요구한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전면전의 최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승리를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채 우리의 문명이 수천 년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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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韓國戰爭 全史)』 청아출판사 2023


다음은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韓國戰爭 全史)』다. 우리와 떨어져 있고,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제삼자적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책이기에 의미가 있는 책으로 생각한다.


2002년에 쓴 것을 개정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전체 이야기, 즉 전사(全史) whole story로서 자세하다. 다른 책에서 다루어진 이야기가 이 책으로도 확인되면서 객관성을 더하고 있다.


이 책의 결론이자 교훈이라 할 <제8장 한국전쟁 후 동북아시아>를 요약해서 인용한다. 한국전쟁에 관계된 여러 나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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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남과 북


북한도, 남한도 통일을 위해 전쟁을 했으나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거의 원래의 분할선인 38선 부근에서 전쟁이 중단됐다. 군사분계선은 서부에서는 38선 아래로 내려가 개성 지구, 옹진반도 등이 북측에 포함됐다. 동부에서는 38선 위로 올라가 철원군의 남쪽 반,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 등이 남측에 들어갔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은 거의 같다고 해도 좋다.(601쪽)


사망자 수는 정확히 모른다. 남북 합해서 300만~4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1931년 만주 침략부터 1945년 패전까지 발생한 일본의 사망자 수 300만 명을 넘는 수치다. 1949년 6월 1일 남북의 총인구가 2,865만 명이었으니, 사망자는 10%가 넘는다. 전사자와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 외에 학살당한 사람도 많았다. 통치자나 점령자가 철수할 때, 북쪽이든 남쪽이든 감옥 안에는 처형된 죄수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적의를 갖고 마을 사람 전체를 살해한 사례도 있었다.(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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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전쟁은 한반도 사람들에게만 일대 분수령을 이룬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에게도 일대 분수령이었다. 충돌은 미국의 대외 정책, 국가안전보장정책, 군사정책, 그리고 국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604쪽)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비는 전쟁 전 GNP 6% 규모에서 1953년 18% 규모로 증가했다.(605쪽)


한국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은 최초의 전쟁이었다. 공산주의자와 싸운 전쟁임은 분명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의 한국을 보면, 이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전쟁이 가져온 거대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쟁 자체는 “잊혀진 전쟁 a forgotten war”이 된 것이다. 워싱턴 링컨 기념당 앞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한국전쟁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한국이 민주화된 1995년으로, 베트남전 전사자 기념비가 세워진 것보다 늦다.(6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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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미국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공공연히 대전환을 이루었다면, 소련의 변화는 은밀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미국의 대전환에 필적하는 변화였다.(607쪽)


한국전쟁은 말 그대로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크렘린 안에서 한국전쟁 총감독을 맡았다. 그의 지휘하에 소련은 북한군과 중국군에게 대금 지불은 일정 기간 뒤로 미룬 채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후방 기지, 병기 생산 공장이 됐다. 게다가 소련 공군은 한반도 상공에서 직접 미국 공군과 전쟁을 했다. 하늘의 전쟁은 전무후무한 미소의 전쟁이었다.(6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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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양국의 “군사, 정치, 경제, 외교의 전면적 힘겨루기”였는데, 무승부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막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에는 희생이 큰 전쟁이었지만, 미국과 대등하게 싸운 혁명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한 위상을 확립했다.(611쪽)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미국이 타이완해협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결과, 중국은 타이완을 무력으로 해방시키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6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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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타이완의 중화민국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장제스 정권은 자신의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하겠다고 여러 차례 제의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6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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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전쟁으로 큰 이익을 본 또 다른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정치 체제와 경제의 기초는 이 전쟁 속에서 만들어졌다. 패전 후 일본 국민의 반전, 반군 감정은 강했고, 헌법 9조 규정과는 친화적이었다.(613쪽)


일본 국민은 한국전쟁을 강 건너 불로 여겼지만, 이 전쟁은 일본 경제 재건에는 큰 의미를 갖는 특수를 안겨 주었다. 한국전쟁은 이후 일본의 비군사적 고도 경제성장의 토대가 됐다. 주관적으로는 비군사적 발전이지만, 객관적으로는 전쟁을 이용한 발전이었다.(6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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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전쟁은 없어야 한다


다음에 쓸 결론을 미리 요약해 본다.

지금껏 70년째 이어진 어정쩡한 상태, 즉 정전(停戰)은 바뀌어야 한다. 이게 종전(終戰)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 이게 평화가 아니라면 다시 전쟁하자는 말 아닌가.


이제 평화로 가야 한다. 자주국방을 완비하고,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하고,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을 하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동아시아를 만들자. 베트남, 우크라이나를 도우면서 수천 년 역사와 전통을 같이 한 동족은 모른척한다니? 물론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 재원으로 전용되지 않게 하는 건 당연하다.


1950년 전쟁에서도 원자폭탄까지 논의되다가 제한전으로 그쳤다. 핵무기를 사용한 전면전은 모두의 죽음이기에 그 정도로 그쳤다는 것이다(리지웨이). 우리가 미중(美中) 간 패권, 한미일 북중러라며 패거리를 나누어 놓은 전쟁에서 다시 싸우려 하나? 동족끼리 다시 왜 무엇을 위해?


올해는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두드러진 해라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온도를 높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동아시아에서 중국·대만의 분쟁 해결과 남·북 평화체제가 지구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우리가 앞장서자. 우리는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이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다.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하자. 전에 했던 말이다.「남한과 북한이 싸우면 일본이 이긴다」.


(10편에 계속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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