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특별기간이라 머라나 10권이나 대여가 된단다. 별것도 아닌데 10권이라는 말에 입에
미소가 번진다. 예전엔 돈을 주고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책을 사서 보곤 했다. 집에 책이
넘쳐나도 손이 안 가는 책들이 의외로 많다. 그게 낭비라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건 왜일까?
그래서 최근에 내린 결론은 책을 빌려서 보기로 결정했다. 책을 빌려서 보면 좋은 점이 많다. 기간 내에 읽어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서 읽을 수 있다. 돈 주고 사기 아까운 책을 공짜로 볼 수 있다. 대충 이런 점에서 빌려 보는 것이 이득이다.
검색을 하고 책 찾으러 서고에 간다. 낡은 종이 냄새가 훅, 먼지 냄새가 훅, 벽지 냄새도
훅, 코를 스친다. 난 이 냄새가 좋다. 책장을 보는 순간, 서로서로 등을 기대고 서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에게 등을 내줄 수 있다는 것, 내 등을 내주고 나는 또 누군가의 등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서로에게 설렘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다. 나는 누구에게 내 등을
내어 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 본다.
책장 사이를 걸어 다니는데 책들이 나를 따라다닌다. 나를 골라 주세요? 이렇게 서고에만 갇혀 있으니
답답해 죽겠어요? 말하는 것 같다. 이 서고에서 책을 찾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뿐이다. 그래서 더욱더 책들이 아우성치는 것 같다.
책 찾을 때 난감한 경우가 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책을 골라야 할 때이다. 허리를
최대한 숙여도 안 될 경우가 있다. 그럴 땐 아예 바닥에 주저앉는다. 모음과 자음 순서도 헷갈려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매기 일쑤다. 다시 국어 공부를 해야 하나 싶다.
낡아가는 것은 책뿐만이 아니다. 책을 찾고 있는 나도 낡아 가고 있다. 이젠 나도 너랑 비슷하다. 책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혹시 나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은 책장에 꽂힌 순서라도 정해져 있지, 난 순서도 명확하지 않다. 뒤죽박죽이다.
빼곡한 삶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나도 도서관에 있는 책처럼 먼지가 쌓여 가고 있을 것이다.
책을 몇 권 고르고 이번엔 어린이 도서관으로 이동한다. 동화랑 동시 관련 책을 몇 권 빌리려 한다. 여기도 손님은 나 혼자다. 컴퓨터 앞에 직원 한 명이 앉아 있다. 혼자라는 게 편할 때도 있다. 오늘 같은 경우다. 큰 서고 안에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완전히 내 세상이다. 친구들아 내가 왔다.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조용하다. 책도 맘 편하게 고를 수 있다. 여긴 책들이 알록달록하다. 색깔이 다양하다. 책이 크다. 책을 펼치니 초콜릿처럼 달콤한 맛이 난다. 먼지가 쌓여 있는 책들조차 여기선 달달한 냄새가 난다. 일곱 색깔 무지개 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듯 행복하다. 꼭 마법의 나라에 들어온 느낌이다. 이 곳에선 나도 아이다. 달달한 막대 사탕을 입에 문 아이처럼, 크고 싶지 않은 피터팬처럼 말이다.
행복한 시간은 여기까지다. 책을 10권 다 빌렸다. 가방에 책을 넣고 언덕을 내려온다. 어깨가 무겁다. 등이 따스하다. 오늘 나에게 등을 내어 준 사람은 책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다.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오후네요. 이렇게 글자를 입력하고 드래그하면 메뉴를 더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