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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Feb 06. 2021

자꾸만 가라앉아요

수영

삶도 마음도 시나브로 가라앉는다. 누가 위에서 찍어 누르는 것 같다. 그러나 누르는 사람은 없다.

   난 물이 무섭다. 많은 물에 휩쓸려 간 적 있다. 어렸을 때 개울가로 놀러 간 적 있다. 친구는 개헤엄을 치고  난 물장구만 치다 왔다. 수영을 할 줄 모른다. 배우려고 한적 없다. '수영이 필요한가?' 이런 생각으로 살았다. 나이가 두꺼워졌다. 뭔가를 해야겠다 싶었다. 건강을 챙길 나이다. 그때 생각한 것이 수영이다. 동네 초등학교에 수영장이 있다. 초급반 등록했다. 성인이 해야 할 운동 중에 수영이 가장 좋다는 썰이 있다. '수영복을 언제 입어 봤더라?' 기억을 더듬어 본다. 처녀 때는 수영복 입는 거 자체가 싫었다. 그런 몸매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물론 몸매로 입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다. 수영에 대한 이해심 부족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십여 년 전에 방콕 파타야로 여행 간 적 있다. 섬이라 수영복은 필수였다. 수영복을 사서 한번 입고 옷장 속에 처박아 뒀다. 다시 꺼내 봤다. 작다. 나이만 두꺼워진 게 아니라 몸도 두꺼워졌다. 매장 직원 추천을 받아 수영복을 샀다. 사들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저게 내 몸에 맞을까?' 걱정됐다. 몸을 비틀고 낑낑대며 간신히 몸에 끼워 넣었다. 거울 속에 그녀가 보인다. 창피하고 부끄럽다. 울퉁불퉁, 미끈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툭툭 삐져나온 몸뚱이가 민망하다. 강습은 월, 수, 금으로 정했다. 화, 목은 자유수영이다. 첫날, 샤워장이다. 회원들이 많다. 나처럼 두꺼운 사람도 몇 명 보인다.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수영장은 락스 냄새 풍이다. 초급, 중급, 고급반이 있다. 난 초급반이다. 물속에 들어가서 준비체조를 했다. 강사는 젊고 키가 크다. 수영이 처음인 사람 손들어 보란다. 나포함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물속에서 나오란다. 물 밖에다 엎어놓고 발차기를 시켰다. 무한 발차기다. 그렇게 수영은 시작됐다. 물 안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호흡법도 배웠다. 시간이 갈수록 물속 시간이 늘어났다. 판때기를 잡고 물장구를 친다. 수영이 아니다. 수영이라 함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몸은 마음과 반비례한다. 마음처럼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엔 다 그래요, 나도 그랬어요' 남들은 말한다. 위로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화, 목은 강습 날이 아니라 자유수영 라인에서 한다. 그곳이 문제다. 다른 사람들은 쌩쌩 잘 나간다. 난 판때기 잡고 발버둥 쳐도 그 자리서 맴맴이다. 잘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기 일쑤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얼굴에 철판 깔고 막무가내로 개기며 허둥 댄다. 난 다른 사람에게 비해 몸이 뻣뻣하다. 한마디로 유연성 제로다. 에어로빅을 3개월 배운 적 있다. 허리운동이 안돼 중도 포기했다. 수영을 배우는 것도 남들보다 느리다. 한 템포도 아니고 세 템포 정도 느린 것 같다. 남들은 판때기를 잡지 않고 앞으로 나갈 즈음에도 난 그러지 못했다. 판때기만 놓으면 몸이 가라앉는다. 수영장은 밑바닥이 다 보인다. 실제로 보면 깊지 않다. 그런데 수영을 하려고 물에 몸을 띄우는 순간부터 그 물은 공포다. 판때기를 잡지 말라고 한 순간부터 그랬다. '이렇게 얕은 물에서도 빠져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난 처음에 몸이 두꺼워서 자꾸만 가라앉는 줄 알았다. 온몸에 힘이 잔뜩이다. 신경세포가 곤두선다. 죽지 않으려는 필사의 몸짓이다. 필사의 몸짓 끝은 물 먹기다. 아마 그때 먹은 물의 양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락스 물을 하도 많이 먹어서 몸속도 깨끗하게 청소가 됐을 거야" 진담을 농담처럼 하곤 했다. 어떤 날은 컥컥거리다 끝날 때도 있다. 온몸에 들어간 힘은 쉽게 나가지 않는다. 강사가 '몸에 힘 빼세요' 아무리 소리쳐도 난 힘센 천하장사가 된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힘이 센 줄 처음 알았다. 초보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남들보다 열정적이다. 초급에서 중급으로 올라갔다. 강사가 올라가라고 했다. 초급 라인은 바닥에 송판이 깔려 있다. 중급은 그게 없다. 물이 더 깊다. 그런데 바닥에 있던 송판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물이 무서워졌다. 공포가 밀려왔다. 그 깊이를 눈으로 본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깊은 물을 감당하기엔 부족한 실력이었다. 겁먹은 아이처럼 버둥거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중급으로 간 첫날, 강사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 '누가 실력도 안 되는 사람을 중급으로 보냈어?' 나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초급 강사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내가 들은 것이다. 내가 중급 라인을 간신히 한 바퀴 돌 무렵이었다. 그땐 내 귀를 원망했다. 이럴 땐 귀가 없었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듣기 싫은 말도 듣게 된다. 항상 좋은 말만 들을 순 없다. 나도 안다. 감안하고 들어도 그 말은 충격이었다. 강사는 내 실력을 보고 한 말이다. 창피하고 민망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두려웠다. 수영은 잘하는 사람이 앞에 선다. 차례대로 하는데 중간에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체된다. 일이 착착 진행되다가 중간에 끊기게 된다. 그게 나다. 그걸 첫날 첫 시간에 들켜버린 거다. 그 날부터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유수영을 하는 날도 빼먹지 않고 나갔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런다고 실력이 늘진 않았다. 애초부터 남들과 체력이 달랐다. 체격이 달랐다. 유연성이 떨어졌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를 위로한다. 노력을 해도 실력은 거기서 거기였다. 수영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다. 그동안 자유형, 배형, 평형, 접영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스타트 다이빙도 배운다. 스타트 다이빙도 재미있다. 다이빙은 머리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 물 밖 스타트 라인에서 강사가 자세를 잡아준다. 물속으로 뛰어내린다. 정석으로 들어가면 스므스한 기분이 다. 그러나 대부분 배가 먼저 물에 닿는다. 배로 물을 찰싹 때리게 된다. 배도 아프고 빨갛게 변한다. 나만 배 아픈 걸로 끝나면 다행이다. 소리가 크게 퍼진다. 남들이 다 듣는다. 때때로 수경도 벗겨진다. 다이빙을 잘못해서 그렇다. 강사가 바뀌었다. 새로운 강사가 다이빙을 강의하는 날이다. 시범을 보인다고 강사가 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얼마 후에 강사가 물 밖으로 나왔다. 이마가 깨져 피가 흘렀다.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후에 들으니 몇 바늘 꿰매었다고 했다. 모두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그 후 수업은 엉망이었다.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건 엄청난 파장을 초래했다. 그 후 그 강사는 다이빙을 말로만 가르쳤다. 절대  물속으로 뛰어드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몇 달 후 그 강사는 그만뒀다. 보름 넘게 유럽 여행을 갔다. 여행에서 팔 인대를 다쳤다. 몇 달 동안은 수영을 끊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 덕에 수영을 끊었다. 중간에 다리도 다쳤다. 또 놀았다. 그런 후에 다시 수영장을 갔다. 고급을 겨우 올라갔을 때였다. 몇 달 쉬고 나니 고급은 무리인 것 같았다. 중급으로 신청했다. 실력은 솔직히 중급도 무리였다. 그래도 열심히 다녔다. 회원들은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한두 번 차를 마셨지만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린 얼굴로 인사한다. 이름을 모르니 내가 다른 회원들에게 어떻게 불리는지 난 모른다. 다시 나가는 날, 난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불리는지 알았다. '피부 뽀얀 그 언니 요즘 안 나오네'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내가 나갔더니 한 회원이 그 말을 해준다. 수영장에서도 그런 말을 자주 듣는다. 기분이 좋다. 몸매가 좋다거나, 수영을 잘한다거나 하는 말은 듣지 못했다. 다리를 다쳤다. 또 수영을 못하게 됐다. 취미를 다른 걸로 바꿨다. 자연스레 수영과 멀어졌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수영장 문이 닫혔다. 다른 취미생활의 문도 닫혔다. 논다. 놀다 보니 모든 게 무거워진다. 몸이 무겁다. 마음도 무겁다. 솔직히 세상도 무겁다. 삶도 버겁다. 세월이 쏜살같다. 그런 면에서 세월은 자유형이다. 빠르게 앞으로 전진한다. 우리네 삶은 접영 같다. 온몸에 힘을 다 쏟아부어야 한다. 들어갔다 나왔다  굴곡이 심하다.  평형 같을 때도 있다. 잔뜩 웅크린 삶을 살 때도 많다.  어느 순간 펴지기도 하지만. 그게 생활이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난 배형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천장도 바라보며 유유자적 호흡도 편안하게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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